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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Nov 24. 2022

매일 마시던 카페라테를 끊게 된 이유


키오스크 앞에서 메뉴를 둘러보았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바닐라라테, 토피넛 라테 등 다양한 종류의 커피 메뉴가 화면에 떴다.


카페라테 버튼을 누르고, HOT, 매장 이용을 선택한 뒤 결제버튼을 눌렀다.


카페라테 가격은 3,400원, 스타벅스 라테가 얼마였더라, 오천 얼마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다고, 이 정도는 나에게 선물하는 건 괜찮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매일 카페에 가서 돈을 쓰는 게 마음에 좀 걸렸다.


번호표를 뽑아 들고 매장을 둘러보자 입구 창가 쪽에 비어있는 테이블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였다.





최근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난 후, 나는 혼자 카페로 향했다.


원래는 직원 한 명과 산책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함께 산책을 하는 시간이 불편해졌다.


내 속도가 아닌 상대방의 빠른 걸음걸이에 맞춰 걸어야 한다는 점, 어색한 침묵이 싫어서 계속 대화 주제를 생각해야 내야 했고 중간에 말이 끊기지 않게 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


한마디로 자연스러운 대화가 힘들었다.


물론 이 정도로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웃고 수다를 떨며 걷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같이 걷는 그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은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선"을 넘기 시작했을 때, 그 사람과 산책을 하는 시간이 도저히 편하지 않았다.


방금 있었던 어떤 사건을 모른 척하고 아무렇지 않게 걷는다는 게.






산책을 하며 함께 보내는 시간 덕분에 어쩌면 나는 상대방과의 유대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더 배려하며 조심했고 일적으로 문제가 생겨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문제를 문제로 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의 선을 넘는 행동에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아 나는 오늘 볼일이 있어서... 먼저 산책하고 들어가세요"


어느 날, 그녀와의 산책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의 산책을 애써 돌려서 거절했다.


그리고 혼자 카페로 향했다.


마음이 살짝 불편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했다.


어쩌면 그녀도 나와의 산책이 불편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더 잘된 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그녀와 산책을 안 하기 시작하면서 업무적으로 엮였을 때 더 단호하게 말을 할 수 있게는 되었다.


사적인 시간을 같이 보내지 않으니 어떤 관계에 묶여 해야 할 말을 굳이 참지 않아도 되었다.


성격상 그동안 잘못한걸 바로 지적 못했고, 이 말을 해도 되나 말아야 하나,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사무실에서 지내지, 고민을 수도 없이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회사는 친구를 사귀러 온 게 아니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내 행동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을 애써 눌렀다.







어느 날, 자는데 배 쪽이 엄청 가려웠다. 참지 못해서 손으로 긁으니 배 전체가 빨갛게 변했다.


새벽에 불을 켜고 약통에서 가려움증에 바르는 연고를 찾아 발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카페라테 때문이었다.


매일 카페에 가서 우유가 가득한 커피를 마셔서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내가 카페라테에 내 마음을 너무 의지했구나, 싶었다.


매일 쓰는 3,400원 때문에 뭔가 마음이 불편했는데 더 이상 이 지출을 계속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라테를 계속 마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결국 점심시간에 혼자 카페에 가는 대신 그냥 주변을 걷기로 했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굳이 카페를 찾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걸으면서도 충분히 머릿속이 환기되었고 마침 날도 겨울 같지 않게 따뜻했다.


라테를 안 마시니 속도 훨씬 편했고 덕분에 커피값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밤에 잠도 훨씬 잘 잤고 알레르기 반응도 서서히 없어졌다.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다.


하지만 덕분에 카페라테를 끊을 수 있게 되어서 어쩌면 다행인 건지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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