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Dec 20. 2022

선을 지키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


"J가 너무 빨리 걸어서 같이 걷는 게 너무 힘드네요~난 천천히 돌고 올 테니 산책 잘하고 와요~" 


애써 쿨한 척,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그녀는 산책코스를 향해서, 나는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과장님, J가 연말에 연차를 몰아서 쓴다고 신청했는데 괜찮나요?"


어느 날,  관리부 직원이 갑자기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연차요? 부서에는 아무 말 없었는데..." 


J는 지난번에도 부서에 아무 말없이 연차를 신청했었다. 연차를 쓴다는 걸 타 부서의 연차 공지 메일을 받고 알게 되었다. 


좀 어이가 없었다. 물론 쉬는 건 본인 자유지만 적어도 부서 사람들에게는 언제 쉴 거라고 말이라도 먼저 하고 연차 신청을 하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렇게까지 요청했는데 그녀는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걸까...? 갑자기 신경이 곤두섰다. 







J를 향해 고개를 돌려 뾰로통하게 물었다. 


"J, 혹시 연차 신청했어요? 지난번에 내가 팀 사람들한테는 말이라도 먼저 말하고 신청하라고 하지 않았나요?" 


나는 원래 남들에게 직설적으로 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서로가 불편한 상황은 최대한 피하는 편인데 J와 계속 부딪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말이 툭 나와버렸다. 








"연차를 쓰는 건 저의 자유가 아닌가요? 왜 허락을 굳이 받아야 하죠??" 


J가 볼맨 소리로 말을 했다. 그녀의 이런 반항기 있는 말투는 처음이었다.  


팀의 막내라면 눈치껏 미리 연차를 언제 쓸 계획이라고 알려만 주면 되는 거였다. 그렇다고 아무도 가지 말라고, 가면 안 된다고 할 사람은 없었다. 





사무실에서 언성이 좀 높아지자 관리부 직원이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J에게 말을 했다. 


"J, 연차를 쓸 거면 그것도 연말에 쓸 거면 부서에 먼저 알리고 신청을 하는 게 순서예요. J가 하는 업무는 타 부서 지원 업무인데 업무와 관련된 분들께 미리 양해는 구해야죠"


"왜 제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죠??" 갑자기 J의 눈시울이 벌게지더니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니, 허락을 받으라는게 아니라, 적어도 업무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미리 쉴 계획을 말하라고요, 그래야 다른 직원들도 계획을 세우죠..." 


관리부 직원이 답답한 듯 다시 말했다. 


아니, 근데 얘는 또 왜 우는 거지...


갑자기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예전에 J와 우연히 얘기를 나눴을 때였다. 


이 회사에 오기 전에 어디에서 일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1년 정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 회사 사무실에서 사장님 일을 보조했다고 했다. 


아, 이 친구가 조직생활을 안 해봐서 뭘 몰랐던 걸까..? 


그때부터 그동안의 J의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지금의 회사에서 어느 날 사장과 외출하면서 부서에 말도 안 하고 휙 가버린 것, 늦게 출근하던 날도 J는 부서에 아무 말이 없었다. 알고 보니 사장 개인적인 업무를 도와주느라 늦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장이 어느 날 회사에서 나가게 되었다. 


이후, 다른 사장이 들어왔고 J는 사장의 비서업무 역할보다 타 부서 사람들의 업무를 보조하는 일의 비중이 더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J에게 늦으면 미리 부서 사람들에게 말을 해야 한다, 외출할 때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가라, 라는 등의 회사생활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건 정말 인간관계에서도 기본이 아닌가? 아니,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눈치 없이 행동하는 J를 볼 때마다 속이 답답했다. 


아니, 이건 눈치가 없는 게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솔직히 그녀의 행동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동안 J에게 할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나는 혼자 고민을 하며 속으로 끙끙 앓았다. 


말로 직접 하기가 곤란할 때는 팀 내 메시지로 정중하게 부탁을 하기도 했고, 안 되겠다 싶을 때는 용기를 내어 회의실로 불러 따로 얘기를 했다. 


회의실로 향할 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 게 괜히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J는 정말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던 J가 밖으로 나가더니 한참 후 사무실로 돌아왔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사과를 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너무 쉽게 다가오는 J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앞으로 잘하면 되죠, 하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자리에서 이메일함을 열어보니 그녀로부터 장문의 편지가 와있었다. 


그동안 내가 본인에게 회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계속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귀를 닫고 있었던 것 같다며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내용을 메시지를 보낸 적이 많았다. 그래서 사과 메일을 받아도 내 마음은 그냥 덤덤했다. 








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자, 그동안 퉁명스럽게 J를 대한 나 자신이 갑자기 창피하게 느껴졌다. 


J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본인도 내가 지적을 할 때마다 마음이 힘들었을까? 


내가 J보다 회사 경력도 많고 나이도 더 많은데, 문득 그동안 나를 스쳐가 여러 유형의 상사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날 힘들게 했던 상사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J덕분에 불편한 상황에도 할 말을 해야 할 때는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었고, 또 멈춰야 할 때는 상대방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성격 상 이런 상황들을 피해만 왔지만 용기를 냈고, 이 과정을 통해 나 자신도 조금은 성장했다고 믿고 싶다. 






아, 그리고 J와 점심은 같이 먹되, 산책은 매일 같이 가지는 않기로 했다. 


서로의 적정거리를 유지하고 싶기도 했고, 어쩌면 J도 불편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였다. 



다만 산책 잘하고 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잊지 않고 해 주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마시던 카페라테를 끊게 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