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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Dec 27. 2022

가성비 좋은 내 마음 케어법


빨리 사진 찍고 인증숏이나 올려야겠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계속 확인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온라인 새벽 기상 모임에 가입을 한 적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혹은 운동을 하는 사진을 찍어서 인증을 하는 거였는데 몇 달 하다 보니 나와는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강제성이 부여되니 좀 더 부지런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실제로 집중을 하는 것보다 "인증"을 하는 거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졸린 상태로 책을 몇 페이지 읽다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인증사진만 떡 하니 올리게 되었다.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하면 동기부여가 더 될 줄 알았는데 매번 핸드폰에서 인증앱을 켜고 사진을 찍는 과정이 귀찮고 번거롭게만 느껴졌다.



결국 새벽기상 모임은 중간에 그만뒀다.







눈을 뜨자마자 물을 끓이고 이쁜 컵에 티백을 넣었다. 커튼을 여니 창문 밖은 아직 깜깜한 밤이다.


잔잔한 재즈음악까지 틀어놓으니 새벽감성이 방안에 가득했다.  


노트를 펼치고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나는 것들을 써 내려갔다.  


첫 번째, 두 번째 페이지를 꽉 채운 후, 세 번째 페이지에 다다르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툭, 하고 나왔다.


지금 제일 고민되고 걱정되는 어떤 문제가 노트에 쓰이기 시작했다. 내면에 쌓이고 묵혀있던 감정들이 하나둘씩 소용돌이치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이런 것들로 내 마음이 힘들었구나...



A4 용지 반 정도 되는 크기의 노트는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세장을 채우는데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무의식 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서였을까,


세 번째 페이지까지 다 쓰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개운했다.


노트에 휘갈기듯 마음속 응어리를 토해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상쾌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위해 매일 새벽 꾸준히 일어나게 되었다.  







서점에서 산 얇은 1,000원짜리 노트는 1년짜리 다이어리보다 회전율이 훨씬 빨랐다.  


금방 채워진 노트를 새것으로 바꿔 써가는 기분도 쏠쏠했고 성취감도 느껴졌다.


며칠 전, 마지막 노트를 거의 다 써가서 몇 권 더 사러 서점에 들렀다.


여유 있게 3권을 사서 나오면서 마치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든든했다.


괴롭고 불안하고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노트가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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