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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Feb 20. 2023

욕망을 채우기 위한 소비

최근 나는 소비요정이 되고 말았다.


시작은 트위드 재킷이었다.


팔로우하고 있는 인플루언서가 직접 제작했다는 블랙 트위드 재킷이 너무 이뻤다.


SNS에 계속 올라오는 사진을 볼 때마다 오래전에 입던 내 트위드 재킷이 떠올랐다.


한창 잘 입고 다니다 내 체구가 커지는 바람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이 찌는 바람에 더 이상 사이즈가 맞지 않아 폐기처분한 그 옷이 생각났다.


그때 그렇게 잘 입고 다녔는데 왜 나는 내가 다시 트위드 재킷을 못 입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한동안 인터넷을 계속 트위드 재킷을 검색하는 나 자신이 보였다.


아니, 그렇게 입고 싶으면 한벌 사 입으면 되는 거 아니야? 누군가 귓속말을 속삭여댔다.


어느 날, 아웃렛 매장을 돌아다니다 트위드 재킷만 찾아보았다. 뭐랄까, 그 옷에 대한 내 욕망을 채우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매장을 돌며 다양한 스타일의 트위드 재킷을 걸쳐보다가 어느 한 매장에서 그래, 바로 이거야, 하는 블랙 트위드 재킷을 만났다.


그리고 바로 질러버렸다.


그게 내 최근 소비의 첫 시작이었다.






금요일 오후였다. 바람이 불고 춥고 스산한 날이었다.


최근, 거울 속 내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예전보다 턱살이 늘어나 보이는 걸까? 밀가루를 줄이는데도 몸무게는 그대로인지.


나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온몸에 퍼져있는 기분이었다.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헤어 스타일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웨이브 좀 넣어버려고 고데기까지 샀었는데 왜 나는 유튜브에서 친절하게 알려줘도 내 머리손질도 잘 못하는 것인지...






몇 년 전, 웨이브파마를 했다가 펌이 잘 안 돼서 미용실을 찾아가 다시 펌을 했는데도 바로 머리가 풀어졌었다.


내 머리카락이 펌이 잘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아 다시는 돈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생머리를 몇 년간 유지했다.


그런데 매일 같은 스타일의 내 모습을 보는 게 그날따라 유독 짜증이 났다.  


다시 한번 펌을 해볼까?


그날 저녁, 퇴근을 하자마자 바로 헤어숍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은 제일 자연스러운 에스컬 사진을 보여주며 최대한 이 사진이랑 비슷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만족! 웨이브파마가 꽤나 맘에 들었다.


기분이 새로웠다.





그리고 또 하나, 속눈썹펌도 했다.


속눈썹 연장은 두 번째인데 해도 크게 티가 안 났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블랜틴트"라고, 속눈썹을 마스카라 한 것처럼 진하게 하는 게 있다고 해서 시도해 보았다. 예전 같으면 돈 아깝게 그런 건 왜 하나, 했는데 사실 나도 속눈썹펌을 해보고 싶었나 보다.


처음보다는 70% 정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다음에는 눈썹연장을 할까 고민 중이다.






최근 운동화도 고민 없이 질러버렸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돈 생각 안 하고 바로 사 먹었다. 한팩에 만원 하는 닭발을 이틀이나 사서 쌈을 싸서 맛있게 먹었고 양념갈비도 주문해서 먹었다.


읽고 싶은 책을 저녁에 주문해서 아침배송으로 받아보기도 했다. (아침배송이 있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른 때였으면 이 책을 살까 말까, 그냥 빌려볼까, 엄청 고민을 하고 뜸을 들였을 텐데 이번에는 욕구를 바로바로 충족해 버렸다.





이렇게 하면 나는 내가 괜찮아질 줄 알았다.


내 욕구를 바로바로 충족해 주면 충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생각 없이 계속 카드를 긁어대는 내 모습을 보고 무의식 속에서 어떤 누군가가 계속 "이젠 멈춰!라고 속삭였다.


카드명세서를 받으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될까?


하지만 대놓고 무시해 버렸다.


뭐랄까, 욕구를 충족하며 사는 삶은 어떤지 궁금했고 삶에서 어떤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물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







그런데 글로 쓰다 보니, 뭐 여자라면 이쁜 재킷도 입어보고 싶고, 속눈썹펌도 까짓것 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운동화 한 켤레 정도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30권도 아닌 딱 3권을 질렀는데 주문을 하고 나서 뭔가 마음이 통쾌했다.


평소였으면 이 책을 살까 말까, 도서관에서 그냥 빌려서 읽을까, 소비에 앞서 고민을 엄청 했을 텐데.



아무튼 최근에 이렇게 한꺼번에, 한 번에 무언가를 질렀던 적이 있었던가...






새로 산 운동화는 박스 채 그대로 며칠 째 현관에 그대로 있다.


트위드 재킷은 집에 와서 딱 한번 입어보고 그대로 옷장에 걸려있다.




속눈썹 펌은 처음 했을 때는 와~했지만 지금은 했는지 안 했는지 크게 신경이 쓰이질 않는다.


그나마 책은 그래도 카페에 가서 정독은 했을 뿐이다.






내 마음속에 소비로써 해결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구나, 나는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나 자신을, 욕구를, 물질적으로 충족하려 애쓰려 한들, 나는 내 욕구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런 단순 소비로는 내 마음을 결코 채울 수 없구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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