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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Feb 26. 2023

독일 프랑크푸르트 기차역에서 잠시멈춤

시차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 정신이 아주 말똥말똥하다.


아침에 샤워하고 준비하려면 빨리 자야 할 텐데,

졸린 상태로 비몽사몽 한 아침을 맞이하긴 싫은데,

조금이라도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노트북을 켰다.







그저께 오후, 드디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뒤셀도르프까지 가는 기차를 타려면 2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캐리어 가방을 끌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왠지 독일스러운 샌드위치가 가득 진열된 베이커리 앞에 멈춰 섰다.



뭘 먹을까, 매대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저거 한번 먹어볼까, 하는 기분이 든 빵인지 샌드위치인지 구분이 안 가는 어떤 음식을 주문했다.  







배를 채울 생각으로만 한입 딱 먹었는데, 이게 뭐지? 뭔데 이렇게 맛있지? 하며 순식간에 그 음식을 끝내버렸다.






안에는 햄, 오이, 마요네즈도 있었는데

독일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서 한참 동안 내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여행객들을 쳐다보았다. 주황색 배낭을 멘 키 큰 아저씨가 지나가는데 독일 산악 아니 여행영화에 나오는 똑같은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 옆 테이블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마주 앉아 쿠키를 드시고 계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일어나서 반대쪽 가게로 가더니 에스프레소 두 잔을 가져왔다. 다른 가게에서 산 커피를 가져오자 할머니가 왜 그걸 여기 가져오냐고,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였지만 할아버지가 뭐 어때, 하는 표정을 짓는 걸로 보니 그렇게 말하는 게 분명했다.



두 분이 마주 앉아 커피와 쿠키를 먹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이던지.


저 쿠키는 또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안 보는척했지만 계속 두 분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눈길이 갔다


할아버지의 뿔테 안경과 체크무늬 목도리를 두른 모습은 멋졌고 할머니의 은발은 기차역 지붕을 뚫고 내리쬐는 햇빛에 아름답게 반짝였다.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두 분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핀잔하는 듯한 표정과  그걸 그냥 넘기려는 할아버지의 익살스러운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테이블에 놓인 에스프레소잔 때문에 더 멋있어 보였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 두 분은 앉아있는 내내 스마트폰도 안 보았다.







그렇게 기차역에서 한참을 혼자 멍을 때리며 사람들을 천천히 관찰했다.


그리고, 이게 별게 아닌 거라 생각했지만

사람들을 구경했던 그때의 순간이 아직도  기분 좋게

남아있다.


그냥 그렇게 그곳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던 그때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바로 기차를 안 타고 쉬어가길 참 잘한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역시

"잠시 멈춤"은

달릴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보게 해 주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아있다 떠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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