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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May 31. 2023

떨리는 마음으로 호텔로비에 갔다

한국에서 가져온 쇼핑백을 들고 호텔로비로 향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인사동에서 산 매듭고리를 정성껏 맨 쇼핑팩은 확실히 운치가 훨씬 있어 보였다.


한 쇼핑백에는 설화수 상자가, 다른 쇼핑백에는 홍삼절편이 있었고 쇼핑백이 비지 않도록 한국마트에서 산 과자 몇 개도 끼워 넣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떻게든 내 마음을 표현해 드리고 싶었다. 이곳에 오기 전, 출국 바로 전날에 다이소에 후다닥 들려서 작은 카드도 샀다.



약속장소인 호텔로비로 내려가기 전, 테이블에 앉아 조심스럽게 감사의 마음이 담긴 몇 줄을 펜으로 꾹꾹 눌러썼다. 문장에 너무 많은 감정을 표출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어색함을 피해 만나서 반가웠고 (만난 이후에 이 카드를 볼 것을 미리 예상하고), 감사했다,라고만 썼다.


10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온건 2006년이었다. 햇수로 따지면 얼마지, 하고 계산기를 두드려보다 깜짝 놀라서 다시 숫자를 계산했지만 정확히 17년이었다. 그렇니까 나는 이 두 분을 17년 만에 만나는 거였다.


손녀의 SNS에 올라오는 두 분의 사진을 이따금씩 확인할 때마다 울컥했다. 사진 속 두 분은 예전보다 많이 늙어 보이셔서 가슴이 아팠다.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는 거구나, 라는걸 실감했다.


언제 이 두 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두 분을 다시 만난다는 건 꿈같은 일처럼만 느껴졌다.






아직도 미쎄스 캐럴을 처음 만난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나는 중학교를 자퇴하고 에콰도르로 유학을 갔었다. 스페인어를 쓰는 현지학교에서 3개월 정도를 다니다가 미국인 학교에 입학을 했다. 스페인어, 영어도 익숙하지 못했고 가족과 떨어져 친척집에 살았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체육수업이었고 핸드볼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신나게 공을 던지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한쪽 구석에 힘없이 쭈그려 앉아있었다. 에콰도르의 날씨는 오후가 되면 해가 쨍쨍했는데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었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체육 선생님이 나를 교내 카운슬러에게 얘기를 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사물함에 책을 가지러 갔는데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내일 오후 한 시까지 Mrs. Carol 방으로 오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 분은 누구지?


Mrs. Carol 방은 초등학생들이 있는 건물에 있었다. 어떻게 찾아갔는지 기억도 안 났다. 다만 그 방이 있는 문으로 가는 길이 참 길었고, 하지만 뻥 뚫린 천장에서는 햇빛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똑똑똑"


누구길래 날 이곳으로 불렀을까? 의문을 품은 채 아무 생각 없이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환한 웃음을 지은 키가 큰 미국인 선생님이 날 반겨주셨다.

선생님이 책상에 앉으셨고 건너편 의자에 날 앉으라고 하셨다. 방안에는 인형이 정말 많았다.


'날 왜 불렀을까...' 의아해하며 의자에 앉았다.


이윽고 선생님은 나에게 여러 질문을 하기 시작하셨다.


내가 왜 에콰도르에 왔는지, 언제 왔는지, 지금 누구랑 살고 있는지, 학교가 끝나면 뭘 하는지 등등. 대답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해 준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한참 어린 중학생이었고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가족을 떠나 당차게(?) 혼자 지구 반대편까지 왔지만 낯선 언어, 환경 속에서 마음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날, 선생님과의 첫 만남 이후 내 사물함에는 일주일 한 번씩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4년 동안 에콰도르에서 미국인 선생님을 그렇게 만났다. 언어, 인종은 다르지만 그 먼 곳에서 의지를 많이 하며 지냈기에 우리의 만남은 참 특별하고도 각별했다.


그렇게 만난 인연을 17년이 지난 얼마 전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만나게 되었다.





매듭을 다니 너무 이쁜 쇼핑백





한국에서 미국까지 가져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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