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Jun 01. 2023

뜨거웠던 그날, 미국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플로리다 올랜도의 날씨는 정말 뜨거웠다.


선생님을 만나기로 한날, 아침에 잠깐 산책도 할 겸 밖에 나갔다가 타 죽는 줄 알았다.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선글라스도 꼈지만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호텔 주변만 돌다가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호텔로비로 다시 돌아와서 쉬는데,

아주 오래전,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에 선생님 차에 올라탔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날, 내가 차에 오르자마자 선생님은 기온이 너무 높다며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셨다. 얼굴이 빨갛게 익어있었는데 에어컨에서 나오는 찬바람 덕분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바쁘고 정신없던 뉴욕을 떠나 펜실베이니아에 도착하니 사방이 초록색이었다. 나무가 우거진 풍경을 보니 마음이 절로 편안했다.



선생님은 점심을 먹었냐고 물으시며 천천히 차를 몰고 가다가 Wendy's라는 곳으로 가서 햄버거 세트를 사주셨다. 뉴욕에서 맥도널드는 많이 가봤지만 Wendy's는 처음이었다.



그때 처음 먹었던 Wendy's 햄버거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아직도 가끔 그 간판이 생각날 때가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사진, 그때 내가 갔던 Wendy's 랑 너무 비슷하다







햄버거를 먹으며, 선생님 앞에서 나는 말이 별로 없었다.


요즘은 누굴 만나면 조용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뎌해서 내가 먼저 말을 일부러 많이 하기도 하는데 그때는 불편함, 어색함을 안 느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낯선 나라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며 언어와 환경이 다른 곳에서 사는 동안, 선생님은 내가 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내가 먼저 연락을 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먼저 손을 내밀어준 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자주 이메일로 요즘의 나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셨고 알고 싶어 하셨다.


그러면 나는 요즘 학교생활은 어떻고 내 마음은 어떤지에 대해 솔직하게 써서 회신을 했다. 


돌아보니 이때 서로 이메일을 교환하며 서로 글을 주고받았던 순간들을 통해 내가 나를 지탱해 나갈 수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의 메일에 회신하며 내 생각을, 감정을 글로 정리하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에콰도르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상담을 받았지만 미국에 와서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나를 지속적으로 챙겨주셨다. 내가 미국으로 올 무렵, 선생님도 에콰도르에서의 생활을 끝내시고 미국으로 돌아오셨는데 여름방학을 맞아 손녀를 돌봐줄 수 없겠냐며 갈 곳이 없는 나를 다정하게 초대해 주셨다.



그때 선생님이 날 데리러 오실 때는 남색 SUV를 몰고 오셨는데 호텔로비에 앉아 옛날을 회상하며 어떤 차가 도착할지 몹시 궁금했다.







선생님은 오후 12시에 도착한다고 하셨는데 5분, 10분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주고받았던 이메일함을 열어보니 교통체증 때문에 좀 늦을 것 같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긴장을 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조심히 오시라며 답장을 보내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가 로비 밖에 하얀색 차가 천천히 주차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저 차가 확실했다.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사람의 감이라는 건 가끔 참 무서운 것 같다.


곧이어 차에서 익숙한 모습의, 하얀색 머리카락의 미국인이 내렸다. 선생님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선생님이 보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로비문 앞으로 황급히 다가갔다. 그리고,  로비 자동문이 열리자마다 선생님 남편과 먼저 눈이 마주쳤다. 크고 파란, 선한 눈빛의 선생님 남편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알아보셨다. 조금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 역시 선생님 남편을 향해 큰 목소리로 연신 "Hi!! How are you"를 외쳤다. 선생님 남편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드디어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곱게 화장을 하신 선생님은 예전과 그대로 아름다우셨다. 다만, 예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가느다란 주름이 입주위로 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마음이 살짝 아팠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선생님은 테이블에 안자마자 동그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시며 내가 옛날과 그대로라고 하셨다. 


에콰도르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유학생과 미국인 선생님은 17년 만에 미국 플로리다에서 그렇게 다시 만났다. 





두 분의 뒷모습을 찍어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떨리는 마음으로 호텔로비에 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