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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05. 2023

뉴욕에서 만나자던 그때 그 말

"우리 언제 뉴욕에서 만나자. 네가 뉴욕에 오면 언제든지 난 갈 수 있어." 


얘는 참 말을 쉽게 하는구나. 나는 한국에 사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뉴욕을 갈 수 있을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왔다. 


그때는 그래도 비행기라도 타고 갈 수 있었겠구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코로나 기간에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뉴욕에 가는 건 정말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미국으로 출장이 잡히고 멕시코까지 가게 되면서 주말이틀 동안 나만의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플로리다에서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문득, 뉴욕에서 같이 만나자고 했던 친구의 그때 그 말이 떠올랐다. 



친구는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 알게 된 케냐인이었다. 에콰도르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뉴욕으로 대학을 갔을 때, 싫어하는 수학시간에 조별 스터디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린다를 알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카페테리아로 향하는데 우리는 우연히 같이 걷게 되었고 린다도 인터내셔널 스튜던트라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살던 아프리카계 흑인인 줄 알았는데 먼 케냐에서 온 유학생이라는 걸 알고 린다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에콰도르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미국에 왔을 때, 캠퍼스에서 종종 한국 유학생들을 보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바로 온 그 친구들의 대화에 거의 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도 없이 매일 혼자 지냈다. 


그동안 한국에서 어떤 드라마가 유행했는지도 몰랐고 내가 에콰도르에서 왔다고 하면 그들은 나를 특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 자신은 내 아이덴티를 한국인이라고 규정하고 에콰도르에서 그동안 낯선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는데 미국에 가자 한국인인데 에콰도르에서 온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왜, 뭐 때문에 에콰도르에 갔는지 궁금하는 질문에 대답하는것도 점점 불편해서 일부러 그들을 멀리했다.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그랬는데 린다는 나를 그런 특이한 눈길로 바라보지 않아 줘서 좋았다. 


인종도 국적도 틀린데 이상하게도 린다랑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아프리카에서 왔지만 린다랑 대화를 할 때면 피부색이 다르다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대화가 잘 통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 캠퍼스를 걷다 린다랑 가끔 마주칠 때면 우리는 주말에 약속을 잡았다. 


같이 맨해튼에 가볼까, 가서 같이 걸을까? 


그러면 우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에 같이 만나서 걷고 또 걸었다. 린다도 내가 좋았는지 머물고 있던 숙소에 날 초대해서 같이 아침식사를 하기도 했고 센트럴 파크를 함께 걷기도 했다.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밥을 같이 먹었던 기억도 많이 없다. 


그저 린다는 날 만나면 참 반가워했고 나를 좋아해 줬다는 것. 나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가며 묻지도 않고 순수하게 날 대해줬다는 것, 만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미국을 떠나서도 린다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내가 중간에 다른 학교로 편입을 하게 되면서 연락이 툭 끊기게 되었다. 


그랬는데 페이스북이 생기면서 린다가 어떻게 지내는지, 사진을 통해 가끔 알수 있었다. 







"하이 린다, 0월 0일에 우리 뉴욕에서 볼 수 있을까?"


페이스북 메신저를 열고 린다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이런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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