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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Dec 19. 2020

[홈랜드] 스토리의 힘  

우리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다


"돌리지 마, 가만 놔둬봐"


리모컨을 손에 쥐고 있던 내가 티브이 화면을 바꾸자 소파에 누워계시던 엄마가 갑자기 일어나셨다. 


코로나 2.5단계가 시작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평소보다 더 자주 울리는 코로나 발생 실시간 문자 때문에 외출하는 게 꺼려지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오후였다. 코로나와 갑자기 추워진 영하의 날씨로 며칠 째 집콕을 하던 중이었다.  뭐 재밌는 영화 없나? 하며 열심히 리모컨으로 검색을 해보다 우연히 해외 드라마 카테고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긴장감 넘치는 첩보물"


이라는 설명에 이끌려 홈랜드 1회를 클릭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익숙한 할리우드 배우, "클레어 데인스"가 주인공이었고 어떤 영화인지 궁금했다. 들어가 보니 미국 드라마였고 시즌별로 나눠져 있었다. 첫회부터 복잡하고 어두운 느낌이 들어서 몇 장면만 보다 다른 데로 돌리려고 했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밝고 유쾌한 영화가 보고 싶었다.  


역시나 극 초반부터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다치는 장면들이 나오시 시작했다. 나는 바로 화면을 나와버렸다. 그런데 옆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엄마가 일어나시더니 홈랜드를 다시 틀라고 하셨다. 마침 방에서 티브이 소리를 듣고 나온 아빠도 티브이 앞에 앉으셨다. 





홈랜드에는 CIA, 테러리즘, 알카에다, 도청, 스파이, 액션, 러시아 비밀요원, 양극성 장애(조울증)와 같은 엄마 아빠가 영화에서 보기 좋아하실만한 요소들로 가득했다. 쫓고 쫓기는 빠른 전개와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설정은 부모님의 구미를 자극했다. 


바깥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외출을 자제해야 할 시점에 홈랜드는 엄마, 아빠에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홈랜드를 보면서 내가 특히 주목했던 건 캐리라는 여주인공이었다. 






캐리는 양극성 장애(조울증)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CIA 요원이었다. 그녀는 항상 "촉"을 세우고 사건과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온정신을 쏟아부었다.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예민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기도 했다. 그런 캐리가 한편으로는 안돼 보이기도 했다. 


냉정하고 냉철한 사고를 가져야 살아남을 것 같은 첩보 세계에서 어쩌면 요즘 대세인 인공 지능이 CIA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캐리가 실수도 저지르고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청자로서 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뭐야 벌써 끝났어?" 


"아이고 피곤하다. 그런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네"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된 엄마와 아빠는 며칠 째 멈추지 못하고 계속 다음회로 넘어가셨다. 잠이 너무 쏟아진 나는 중간에 포기하고 먼저 자러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와 아빠는 아침부터 홈랜드에 빠져계셨다. 

사울이 앨리슨의 가방에 몰래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디서 누구와 접선하는지가 몰래카메라를 통해 다 추적이 되고 있었다. 이걸 숨죽여 지켜보는 캐리의 표정을 보며 몰입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홈랜드는 그동안 본 첩보 드라마 중 단연 최고였다. 



엄마와 아빠가 잠도 못 주무시고 티브이 앞을 떠나지 못하게 한 "홈랜드"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탄탄한 스토리였다. 첫 스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다음 스토리로 이어졌고, 다음 스토리가 또 다른 스토리로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홈랜드의 스토리에 빠져버렸다. 스토리의 흐름이 끊길까 봐 화장실도 못 갔다. 


홈랜드가 10년 동안 방송될 수 있던 비결은 결국 스토리의 힘이었다. 





홈랜드를 보면서 나의 관심을 끈 또 캐리를 연기한  클레어 데인스라는 배우였다. 궁금한 마음에 그녀의 인터뷰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클레어 데인스는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상대 여배우 역을 제안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거절을 했다고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영화에서 이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연기 호흡을 맞춘 직후였고 같은 배우와 비슷한 장르의 로맨스 영화를 다시 찍는 건 좀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고 했다.  


타이타닉은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 영화였는데 거절 한걸 후회하지 않냐고 인터뷰 진행자가 물어보았다.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타이타닉은 제 운명이 아니었어요"


영화 활동을 하던 중 클레어 데인스는 중간에 학교로 돌아갔다고 했다. 인기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쇼비즈니스 업계를 뒤로하고 그녀와 비슷한 나이의 또래들과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이후 영화업계로 다시 돌아와 찍게 된 "홈랜드"는 그녀의 인생 대표작이 되었다. 





그녀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간 클레어 데인스처럼 나도 나만의 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도가 남보다 느리다고 조급해하거나 걱정하는 습관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스토리가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와 다른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홈랜드를 정주행 한 줄로 알았던 엄마, 아빠가 중간에 잠이 들어서 놓친 에피소드가 있다고 하셨다. 일상으로 돌아오신 줄 알았는데 아직도 홈랜드에 빠져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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