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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Dec 09. 2020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생겼다

마음을 내는 일

2021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솔직히 이 다이어리를 얻기 위해 커피를 열심히 사 마시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커피 한두 잔 값이면 괜찮은 다이어리 하나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는데.


하지만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살 때마다 매대에 있는 다이어리들이 궁금했다. 다이어리를 들어서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얼른 제자리에 놓아두었다. 이 다이어리의 원가는 얼마나 될까?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왠지 나에게 "물욕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집에 몇 해 전 날짜가 찍힌 한 번도 안 쓴 새 다이어리가 몇 권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연도가 다르다는 이유로 안 썼을, 그래서 지금 책장에 쌓여있는 그 다이어리들을 요즘 필기용 노트로 열심히 쓰고 있는 중이다.


2021년 다이어리를 사야지,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 나에게 굳이 2021년이라는 날짜가 박힌 다이어리를 당장 사야 할 이유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 있는 노트를 활용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날짜는 핸드폰으로 확인하면 되니까 굳이 다이어리 달력의 날짜가 맞지 앉아도 상관없었다.


나에게는 빈칸들만 있으면 충분했다.




책장에는 다이소에서 사고 쓰다 만 노트들이 꽤 있었다.


내가 이 노트들을 언제 샀지?


그리고 기억이 났다. 그때 산 노트를 막상 쓸려고 하니 종이 재질이 맘에 들지 않아서 사고 또 샀던 것이었다.


싸다는 이유로 비슷한 것들을 계속 샀었다. 하지만 쓰지 않은 노트들은 책장에 쌓여만 갔다.


그리고 결국 나는 다이어리로 유명한 브랜드의 노트를 사고 말았다. 종이 재질도 맘에 들었고 크기도 아담했다. 하지만 그 다이어리도 결국 끝까지 쓰지는 못했다.




책장을 정리하다 종이가 구겨지고 더러워져있는 다이어리가 눈에 띄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쓴 일기장이었다.


어디서 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근처 문구점에서 산 것 같았다. 한 손을 다 펼친 것보다 조금 큰 크기는 가방에 넣고 다니기 편했다. 스프링 형태여서 장을 넘길 때 수월했고 무엇보다 가벼웠다.


회사를 다닐 때 매일 잠자기 전 엎드려서 일기장에 그날 있었던 일,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일을 끄적였다. 그렇게 손으로 뭔가를 적어야만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는 것 같았다. 첫 장에 쓴 반듯반듯했던 글씨체는 어느 순간 날려 치기 필체로 둔갑해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기장은 불안하고 막막했던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 일기장은 내가 제일 아끼는 다이어리가 되어주었다.




다이소 다이어리여서 다 쓰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에게는 절박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다이어리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쓸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디엔가 끝은 있습니다."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며 너무 와 닿아서 일기장에 적어 둔 문구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와서 적었는데도 적고 또 적었던 기억이 났다.


지금 그때 쓴 일기장을 펼쳐보니 그때의 고통은 정말 끝이 나 있었다.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끝까지 다 쓸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불안하고 절박한 마음 대신

매일 성장하고 바뀌어가는 내 모습을 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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