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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26. 2023

도쿄에 다녀오겠습니다 - 4

충동여행이 알게 해 준 것


"요즘 참 인생이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때는 참 우울해요..."


우연히 회사 여직원들과 밥을 먹는데 조용히 잘 지내 보이던 여직원이 이런 말을 꺼냈다.  


"아 정말요? 전혀 안 그래 보였는데... 나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동지를 만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도쿄에서의 2일 차였다. 새벽에 깨서 어디를 가볼까,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다 "키치조치"가 떠올랐다.


그래, 오늘은 키치조치에 가보자. 혼자여행의 좋은 점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 마음이 내키는 곳을 아무 때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키지조치에 있는 이노가시라 공원에 갔는데 토요일 오전이라서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일본에도 아이들보다 개가 더 많아 보였다.


공원에는 가꾸지 않은 풀이 꽤 많았다. 바닥이 진흙이라서 걷기에 불편한 곳도 보였다. 하지만 반듯반듯한 공원보다 오히려 오랫동안 방치된듯한 모습의 공원이 훨씬 자연친화적으로 느껴졌다.


키치조치에는 작고 이쁜 샵들이 많았다. 외관이 이쁜 액세서리 가게에 들어가 반지를 껴보았다. 살까 말까 고민이 될 정도로 마음에 드는 반지가 있었는데 왠지 자주 안 낄 것 같아 조용히 내려놓았다.


비록 도쿄여행은 충동적으로 왔지만 쇼핑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작은 샵들을 다 구경하고 나오니 저 멀리 이쁜 브런치 가게가 보였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안 가니까 오늘만큼은 혼자 브런치를 즐겨볼까. 밖에서 좀 고민을 하다 큰맘 먹고 들어갔다. 친절하게 맞아주는 일본인 직원 덕분에 기분 좋은 혼밥을 했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브런치 맛집을 스스로 발견한 것 같아 왠지 뿌듯하기도 했다. 그것도 도쿄에서.



웨이팅 손님이 보여서 오래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근처를 걷다가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들어가 볼까 말까 또 망설이다 에이 모르겠다,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본 특유의 좁디좁은 공간에 작은 테이블 몇 개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다행히 창가 테이블이 비어 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옆자리에는 일본인 여성이 커피와 베이글을 주문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한 부부가 일본어로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브라질 원두커피를 주문을 한 후 향을 음미하며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을 안 쳐다보는 척하며 슬그머니 지켜보았다. 오랜만에 듣는 잔잔한 올드팝송 때문에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커피를 다 마시고 다음 사람을 위해 조용히 카페밖으로 나왔다.


도쿄에 가면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 가지기.


나의 위시리스트를 드디어 이루었다.










키치조치에서 다이칸야마로 갔다.


츠타야 서점이 궁금했는데 주말이라 사람이 엄청 많았다. 조용히 서점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후다닥 내부만 살펴보고 밖으로 나왔다. 이때가 오후 3시쯤이었는데 아침부터 계속 걸었더니 다리가 너무 아팠다. 안 되겠다 싶어서 벤치에 앉아서 좀 쉬다가 숙소로 갈까, 하다 왠지 시간이 아까워서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부야로 넘어왔다. 배는 고픈데 마땅히 먹고 싶은 걸 못 찾아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시부야 거리를 또 계속 걸었다.  그러다 교자사진이 크게 붙여져 있는 어느 식당을 발견했다.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교자 한 접시를 주문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한 접시를 또 시켜 먹었다.


그리고 시부야 거리를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피로가 덮쳤고 그제야 숙소로 돌아왔다. 따뜻하게 데워진 물에 반신욕을 했더니 잠이 쏟아졌다. 바닥에 깔아놓은 매트리스에 눕자마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몸과 마음이 참 개운했다.





 


도쿄에 있던 2박 3일 동안 하루 평균 나의 걸음은 이만 보 이상이었다.


생각이 많을 때는 무조건 몸을 움직이세요.


언제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그 말이 진짜였구나.   







아침에 출근하고 퇴근하면 유튜브를 보다가 잠에 들기 일쑤였다.  


이런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저녁 8시에 줌으로 하는 어떤 코스를 신청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수업 내용은 전혀 나랑 맞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집중도 안되었다. 내 얼굴이 안 보이게 화면만 켜놓고 수업을 듣다가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뭐 하자고 이걸 신청했을까.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을걸. 두 달 동안 듣지도 않은 수업이 드디어 끝나자 돈을 땅에 그냥 버린 것 같아 찝찝했다.



그러다 또 토요일에 하는 어떤 외국어 수업을 신청했다. 시간은 오후 3시였다. 그래 앞으로는 주말을 좀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 하지만 3달치라고 생각했던 수업료가 한 달 수업료라는 걸 뒤늦게 알고 첫 한 달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취소를 했다.


하지만 진짜 취소를 했던 이유는 토요일에는 무조건 집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그 외국어를 배우고 싶었다면 나에게 투자를 하지 않았었을까.







이것저것 시도를 했지만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새로울 게 없는 일상 속에서 점점 무기력해졌다.


나 자신을, 내 생활을 변화하고 싶었지만 쉽지가 않았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초조하고 암담했다.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래서 충동적으로 도쿄로 가는 비행기표를 하루전날에 샀던 거였다.









아, 나는 이렇게 낯선 곳에서 헤매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자고 있던 감각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도쿄에서 지칠 때까지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떤 생각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이런 느낌들을 글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아, 그렇지, 난 글쓰기를 좋아하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할 때 집중을 잘하는지 그런 것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의 내 일상이, 생활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과도한 SNS 사용으로 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그것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도쿄에서는 이렇게 하루를, 1분 1초를 알차게 보내고 있어서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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