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에서 되찾은 자유

관계에 거리감은 꼭 필요하다

by 마리


아휴... 또 신호등이 또 걸려버렸네..

집에는 언제 도착하지




날씨가 매우 추운 어느 날이었다. 퇴근을 하려고 책상정리를 하고 컴퓨터를 껐다.


휴, 이제 퇴근이구나.


그런데 집에는 언제 가지?


월요일이라 그런지 몸은 더 무겁고 피곤했다. 지하철역이 지상이라서 열차가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덜덜 떨며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했다. 혹시 오늘 또 지하철이 지연되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패딩잠바를 옷걸에서 빼서 걸쳤다.


"집으로 바로 가요?"


거대한 패딩잠바를 겨우 껴입고 지퍼를 올리고 있는데 옆자리 상사분이 넌지시 물으셨다. 아무 생각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그럼 같이 나가요, 태워줄게요" 상사와는 사는 동네가 지하철역 2개 역으로 가까웠다.


아 정말요?


나도 모르게 네,라고 말하고 먼저 내려가 지하 주차장에서 상사를 기다렸다. 이렇게 추운 날에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다가 열차까지 지연되면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따뜻하고 편하게 집에 가게 될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놓였다.


상사의 차에 앉자마자 엉덩이와 등이 따뜻했다.


하지만 퇴근시간대여서인지 회사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길이 엄청 막혔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람들로 빽빽하게 찬 지하철을 탈 때 마자 숨통이 조여 오는 느낌이었는데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했다.


하지만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평소 직원들을 배려하고 웬만하면 남에게 피해를 안 끼치려고 하는 상사도 왜 회사에서 답답하고 불만이 없겠는가,라는생각도 들었지만 차 안에서 한 시간 내내 이어진 그분의 감정 섞인 목소리를 견디는 건 쉽지 않았다.


차가 막히고 신호등 빨간불에 계속 걸리다 보니 서로 딱히 할 말도 없었고 자연스레 회사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상사는 회사에 대한 어떤 불만, 문제점을 토하듯 뱉어내기 시작하셨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기도 해서 맞장구를 치며 응수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귀가 너무 따갑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니면 등이 너무 따뜻한데 내가 목도리를 계속하고 있어서였을까. 그런데 하고 있던 목도리를 푸르고 싶지도 않았다.



이 차에서 빨리 내리고 싶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젠장, 신호등은 왜 이렇게 계속 걸리는지.... 상사가 길을 찾으려고 켜둔 네비에 예상 도착시간을 보니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가는 거랑 거의 비슷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갈걸.


나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상사의 불만에 찬 토로는 계속되었다. 나는 창밖을 응시하며 제발 신호등이 빨간불에 걸리지 않기만을 고대하며 영혼 없는 목소리로 아, 네... 를 반복했다.


사실 상사가 나에게 태워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전에도 몇 번 태워다 주신적이 있었지만 그 차를 탄 걸 후회했다. 몇 번 그분의 호의를 거절 못해 탔다가 다시는 안 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후, 그분이 또 태워준다고 할 때마다 약속이 있다, 볼일이 있다는 핑계를 댔다. 그리고 이후, 그분도 외근을 자주 나가시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 퇴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걸 잊고 이번에 또다시 타다니…


집 근처에 거의 도착해 문을 열고 그 차에서 내라리자마자 속이 후련했다.


다음 날, 그분이 또 태워다 준다고 하시길래, 퇴근 후 볼일이 있다고 해버렸다.


날은 여전히 추웠고 지하철은 지연이 되었지만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치는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지하철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지만 속은 울렁거리지 않았다. 사람들 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켰다.



그리고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