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분에 내 생에 첫 사업자등록

떨리고 설레었던 순간

by 마리



"고객님, 사업자 증명원이 아니라 사업자등록증을 들고 오셔야 하는데요..."


개인사업자용 계좌를 만들려고 은행에 갔는데 상담직원이 나를 보며 난처해했다.


홈택스에서 분명히 사업자등록증을 다운로드하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져온 건 "사업자등록증명원"이라는 서류였다. 알고 보니 사업자등록증은 사업을 시작할 때 세무서에 등록된 사업장을 뜻하고 사업자등록증명원은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였다. 사업자등록증이면 사업자등록증이지 증명원이라는 게 따로 있는 줄도 몰랐다.

큰 맘먹고 은행까지 왔는데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순간 힘이 빠졌다. 그런데 직원분이 일단 통장은 만들어줄 테니 사업자등록증은 팩스로 보내달라며 포스트잇에 번호를 적어줬다.


처음부터 일이 꼬이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사업자등록증을 인터넷으로 발급받아 보낼까 했지만 원본을 발급받고 싶었다. 핸드폰에 사업자등록증 원본 발급받는 곳, 이라고 검색하니 세무서라고 떴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세무서가 근처에 있었다.






세무서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문득 사업을 하시는 아빠가 "잠깐 세무서 좀 갔다 올게"라고 하신 말이 생각났다. 근처에 도착해서 세무서 건물을 바로 못 찾고 헤매다 표지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곳이 아빠가 말하던 그 세무서구나. 이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 세무서라는 곳에 와보게 되었다.


창구에서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세무서 직원과 실랑이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가 하는 말을 직원이 잘 알아듣지 못해서 아저씨가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가 뭘 잘못했나?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아저씨가 답답해하며 몇 번을 설명하자 그제야 직원이 이해했다면서 아저씨와의 오해가 풀렸다. 그제야 아저씨의 표정이 밝아지셨다. 괜히 아저씨를 오해한 것 같아 속으로 미안했다.


나에게도 저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이제 겨우 사업자등록을 마쳤고 아무것도 시작한 게 없는데 나는 주위를 살피며 침을 꼴깍 삼켰다.


"딩동"


번호판을 올려다보니 내 차례였다. 창구에 가서 담당 여직원에게 사업자등록증 원본을 발급받으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여직원은 쌀쌀한 말투로 "재발급 말씀하시는 건가요?"라고 했다.


"아니요, 원본 발급이요"

'내 말을 못 알아 들었나?' 속으로 생각했다.


"재등록하신 거 찾으러 오신 건가요?" 여직원이 다시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아니요, 등록증 원본 발급이요" 나는 똑똑히 했던 말을 반복했다.


세무서가 처음인 나는 좀 긴장했고 머릿속에는 "사업자등록증 원본 발급"이라는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여직원은 컴퓨터 키보드를 탁탁 치더니 모니터를 잠시 응시했다. 그리고 XYZ 가 내 사업자명이 맞냐며 물어봤다. 맞다고 얘기해줬지만 내 이름이 아닌 사업자명으로 나를 확인하는 게, 그 상황이 매우 어색하게 느껴졌다. 여직원은 멀리 있는 프린트 기계를 향해 높은 구두 힐 소리를 내며 다녀오더니 오더니 창구 틈새로 나에게 서류를 건넸다.


드디어 사업자등록증 원본을 받았다. 세무서 의자에 앉아 원본 사진을 찍고 핸드폰 팩스 앱을 통해 은행에 바로 전송했다.




세무서 밖을 나오는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에서 내 꿈을 펼치며 살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위험해 보였고

리스크가 크게만 느껴졌다. 사업은 큰 자본이 없으면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속화되는 디지털 세계에서, 온라인으로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조금씩 찾아보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회사를 나왔지만 코로나 덕분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갈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둘씩 해야 할 일을 적어가며 하루를, 일주일을 계획하며 그렇게 매일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군가는 분명 코로나 덕분에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꼭 있게 될 겁니다"


앞으로 힘든 시간도 분명 있을 테지만 나 역시 지금의 순간을 되돌아보며 몇 년 후 꼭 저렇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