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내 공간에 해답이 있었다
오전에 30분 정도 걸었더니 온몸이 개운했다.
일을 하지 않고 있던 몇 년 전 그때, 나는 집 근처 헬스장으로 아침마다 출근을 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가 움직이기 싫은 몸을 억지로라도 끌고 나왔다. 운동하고 땀을 내고 샤워를 하면 기분이 정말 상쾌했다.
뭔가를 해낸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그리고 그 뿌듯한 마음을 느끼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집 밖으로 나갔다.
운동이 끝나면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집으로 바로 돌아가기는 싫어서 내 발걸음이 주로 향한 곳은 헬스장 근처에 있는 작은 책방이었다. 책방이라고 하기에는 그래도 규모가 꽤 있는, 상가 지하에 있는 서점이었다. 그 서점은 이 동네에 이사 올 때부터 있었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어서 어디 갔다가 돌아올 때면 잠깐씩이라도 서점에 들르곤 했다. 책을 꼭 읽지 않더라도 그냥 그곳을 한 바퀴 돌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재충전되는 것 같았다.
오전 일찍 운동을 끝내면 서점은 오픈을 할 시간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서점에 가는 걸 좋아했다.
그 시간에는 사람도 많이 없었고 책방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에 덩달아 내 마음도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곳을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읽을 책을 서너 권 골라 나무 탁자로 오곤 했다. 의자는 매우 딱딱해서 오래 앉아있기에는 불편했다. 하지만 책을 손에 들고 자리에 앉으면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듯한 어떤 짜릿함이 느껴졌다. 일상을 잊고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랄까?
앞으로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하나,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여러 고민들에 휩싸여 있던 때였다.
이 사람의 삶은 어땠을까?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이런 질문들이 많았는데 책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을 발견할 때면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좋은 문장을 찾는 것만으로도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뿌듯했다.
한때 온라인으로 사람들이 책을 주문하기 시작하고 또 이 지역에 대형 서점이 들어서면서 동네 서점에 사람이 점점 안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게 사람이 너무 없던 썰렁했던 동네 책방의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이 서점이 문을 닫으면 어떡하나. 내가 애정 하는 이 공간이 없어질까 봐 불안했다.
이때 마침 동네 작은 책방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소식을 많이 접하고 있던 터라 제발 이 곳만은 그대로 있어 주길 바랬다.
며칠 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새로 오픈한 대형 서점을 가보게 되었다. 직접 가 보니 그곳에는 사람이 책 보다 많아 보였다. 숨이 콱 막혔다.
그곳에서 뛰쳐나와 바로 동네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평소 살까 말까 고민했던 책을 몇 권 샀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사람들이 이곳에서 제발 책을 사 주길, 이곳이 계속 우리 동네에 있어주길 마음속으로 바랬다.
이 책방 주인도 손님 발길이 뚝 끊긴 이 서점을 이대로 유지하 면 안 된다는 위기를 느꼈던 걸까?
어느 날 리모델링을 한다는 이유로 한동안 서점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서점이 다시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궁금한 마음으로 그곳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조명을 바꾸고, 목재가구로 바꾼 인테리어 덕분인지 분위기가 고급스럽게 보였다. 벽에는 “지역주민을 위한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문구가 보였다. 서점 한쪽에 새로 생긴 몇 개의 강의실이 보였다. 인문학 수업, 북콘서트 일정이 붙어있었고 스터디 룸도 생겼다. 나는 신기해서 서점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내 공간이 재탄생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공간이 그대로 유지가 되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요즘도 나는 동네 서점에 갈 때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나도 모르게 계속 체크를 하게 된다. 강연실에서는 어떤 행사를 하고 있는지, 계산대에서 사람들이 책을 사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평소 읽어보고 싶었던 책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 어떤 책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용과 문장들이 가슴에 팍 꽂힐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조심히 표지와 내지의 질감도 함께 느껴보았다. 나와 긴 호흡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 책을 현장에서 바로 구매했다. 책을 손에 쥐고 책방을 나올 때의 그 설렘과 짜릿함이란! 그런 책들은 온라인에서 제목에만 이끌려 샀던 책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사례에 대한 책을 읽을 때면 우리 동네 서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쩌면 책방 주인도 서점에 있는 책들을 읽으며 앞으로의 운영 방향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고민해서 이렇게 다시 재탄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지게 바뀐 서점을 둘러보니 노력과 고민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당시 취업이 안돼서 매일 고민하며 내일을 두려워했던 나는 새롭게 태어난 이 멋진 공간에서 어쩌면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출처: 프랑스 파리 여행 중에 직접 찍었던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