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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사리 순간들
다시 출근 전, 나의 버킷 리스트
용기를 낸다는 것
by
마리
Mar 31. 2021
다시 출근 전, 꼭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주중에 혼자 카페에서 시간 보내기.
무조건 평일이어야 했다.
마침 재난지원금이 남아있어서 맘 편히 카페로 향했다.
스타벅스 카드가 있었지만 언젠가 가본 적 있는 다른 카페에 가기로 했다. 그곳에서는 재난 지원금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착하니 역시나 평일이라 사람이 없었고 창가 쪽 테이블도 비어 있었다. 혹시나 싶어 직원에게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쇼핑몰 안에 있어서 사용이 안된다고 했다.
아뿔싸. 이건 내 계획이 아니었는데
그냥 계산하고 들어갈까? 망설였지만 재난지원금을 쓰고 싶었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 길 건너편 사거리에 언젠가 본 적 있는 새로 오픈한 카페가 생각났다. 고급스러운 외관 때문에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재난지원금이 있었다. 그래, 오늘은 맘 편히 좋은 데서 비싼 커피를 마셔보자.
발걸음을 재촉해 카페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들어가는 입구의 커다란 문이 닫혀있었다. 입구에는 와인, 브런치 판매라고 적혀있는 게 보였다. 설마 저녁에 와인만 파는 곳인가? 그래서 문을 닫아 놓은 건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다 창가에서 꽃을 다듬고 있는 직원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 그제야 플라워 카페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를 판매한다고도 적혀 있었다.
가본 적도 없는 럭셔리한 카페에 갔다가 괜히 커피값만 비싸게 내고 후회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에게는 재난지원금이 있었다. 어차피 내 돈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용기를 내어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자 문이 부드럽게 쓱 열렸다.
눈앞에 여러 종류의 풍성한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마스크를 썼지만 촉촉한 실내가 기분을 좋게 했다.
직원이 나를 보자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이른 오전이라 손님은 한 명도 없었지만 생화로 둘러싸인 내부와 큰 목재 테이블, 그리고 밖이 훤하게 보이는 통유리에 마음이 홀리고 말았다. 우연인지 아닌지 매일 아침 유튜브로 듣던 재즈음악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난지원금 사용은 가능했고 카페라테 가격은 스타벅스와 비슷했다. 주문을 하고 제일 맘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노트를 펴고 끄적끄적 생각을 적어 내려갔다. 손님 한 명 없는 아름다운 카페를 나 혼자 차지하다니.
이런 카페가 근처에 있는 줄도 몰랐다. 비쌀 것 같아서 아예 들어가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곳이었다. 이런 멋진 곳이 있었다니.
주중에 혼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소원을 드디어 이뤘다.
다시 출근을 앞두고 심란한 나에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아직도 헤매고 있는 나에게 이 멋진 공간이 걱정하지 말라고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가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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