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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근 전,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by 마리

합격소식을 아직 알기 전이었다.


일요일 오후,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여자 혼자 여행, 혼자 국내여행, 뚜벅이 국내여행이라는 키워드들을 검색하니 여러 지역이 쭉 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회사로 돌아가던, 안 가든 아무것도 손에 아무것도 안 잡히는 요즘의 일상을 벗어나야 했다.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느 쪽으로든 곧 결론이 날 예정이었다. 그래서 더 떠나고 싶었다.








계획은 1박이었다. 가방에 세면도구, 잠옷, 갈아입을 옷만 챙기고 서울역으로 갔다. 주말 오후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배가 고파서 푸드코트에서 순두부찌개를 먹고 나니 기차를 탈 시간이었다. 출발 10분 전, 서둘러 플랫폼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혼자 해외여행은 많이 했어도 혼자 국내여행은 처음이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에 내려서 제일 먼저 가까운 곳에 있는 첨성대를 보러 갔다. 주말 오후라서 방문객들이 엄청났다. 복잡한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첨성대 사진 몇 장만 얼른 찍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배가 고팠지만 관광지 근처에서 혼자 식당을 들어가는 게 망설여졌다. 출발하기 전, 푸드코트에서 순두부찌개는 얼마든지 혼자 먹을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만 하다 저 멀리 간판도 제대로 없는 어느 카페가 보였다. 커피나 마시자 싶어 밖에서 주문을 하는데 카페 안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주인에게 안에서 마셔도 되냐고 물으니 그러라고 해서 얼른 들어갔다.



보통 때보다 옷을 얇게 입고 와서 그런지 몸이 추웠다. 첨성대 사진 몇 장 찍은 게 다인데 숙소에 빨리 가서 쉬고 싶었다.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시니 몸이 금방 따뜻해졌다. 더 이상의 구경은 그만하고 예약해둔 숙소로 가기로 했다. 네비를 켜고 찾아가다 아침에 먹을걸 사러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 군고구마를 팔고 있을 줄이야. 저녁을 안 먹길 잘한 것 같았다. 남아있던 군고구마 2개를 다 사니 왠지 마음이 뿌듯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안 갈아입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핸드폰을 보니 아직 아무 연락이 없었다.



합격이 돼도 오케이, 안돼도 오케이라는 지인의 말을 마음속에 되네였다.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절실했던 건 아니었다. 우연히 기회가 와서 면접을 봤을 뿐이었다.



합격이 안되더라도 세상이 다 끝나가는 것처럼 힘들어하지는 않기로 했다. 다른 길로 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결과가 궁금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누워있다 보니 배가 고팠다. 방금 사온 군고구마가 생각나 벌떡 일어나 앉았다.

봉지에서 군고구마를 꺼내 반으로 자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껍질을 살살 까서 입에 넣으니 슈크림처럼 부드러운 고구마가 입안 가득 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심각했는데 티브이를 보며 군고구마를 까먹으니 알 수 없는 행복감이 몰려왔다. 첨성대 사진을 찍은 것보다 방에서 혼자 고구마를 까먹었던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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