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얼굴 노출은 여전히 두렵지만

마음을 내는 일

by 마리


링 라이트와 마이크가 포함된 유튜브 초보자 키트가 도착했다. 박스는 생각보다 꽤 컸다.


키트를 사기 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어떤 구성품이 포함되었는지, 설치는 어떻게 하는지 보고 또 봤다.


영상을 보면 볼수록 저 키트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삼각대보다 더 편리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박스가 도착한 지 일주일이 넘도록 열어보지도 않고 방구석에 모셔두기만 했다. 키트만 도착하면 뚝딱뚝딱 다시 영상을 찍을 것만 같았는데 나의 비장했던 각오와는 달리 마음만 더 무거워졌다.


"저걸 빨리 꺼내야 되는데......"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데 포장도 안 뜯은 상자가 계속 눈에 아른거렸다.




유튜브를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지만 뭘 어떻게 찍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관심만 많아서 강의도 들으러가 보고 책도 읽어봤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굴이 노출되는 것도 걱정이었다.


AI 알고리즘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어느 날 유튜브에서 50대 어느 여성분이 혼자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올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대체 이분은 어떻게 영상을 만드는 거지? 편집은 어떻게 하는 거지? 저분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핸드폰 속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여행할 때 찍어두었던 동영상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한번 모아서 유튜브에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앱에서 VLLO와 키네마스터 같은 영상편집 관련 앱을 바로 다운로드했다. 유튜브에는 조금만 검색하면 어떻게 영상을 편집하면 되는지, 유튜브에 어떻게 올리는지에 대한 정보가 수두룩했다.


나는 이 버튼 저 버튼을 눌러가며 음악도 넣고 자막도 넣으며 그럴싸한 여행 영상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날 바로 개설한 내 채널에 첫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정말 뿌듯했다.


하지만 편집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도 많이 걸렸고 핸드폰 앱을 계속 보니 눈이 피곤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평소보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립스틱을 바르고 방구석에 앉아 탁자를 폈다. 삼각대를 올려놓고 카메라를 켰다. 책상에서 쓰던 LED 등이 내 얼굴을 향하게 하자 화면 속 내 얼굴이 깔끔해 보였다. 연예인들이 왜 그렇게들 조명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회사에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그때, 나는 작정하고 핸드폰 카메라 앞에 얼굴을 비추어보았다. 회사 밖에서 뭐라도 시작해야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절박함이 나를 카메라 앞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리고 여행 영상을 미리 편집해 본 실력으로 드디어 내 얼굴이 올라간 영상을 한편 찍어 올리게 되었다.


한편을 찍고 나니 다음 영상에 내 얼굴이 보이는 게 덜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영상을 찍기 위해 치장하고 꾸미는 일이 귀찮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영상 찍는 걸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뭔가 계속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여행을 가서 찍은 영상들만 대충 짜깁기해서 올리기 시작했다.


결국 내 유튜브는 내가 봐도 성의 없는 채널로 전략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채널에는 그럴만한 콘텐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 조차도 흥미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영상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스토리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내 얼굴이 어떻게 나올지만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왜 유튜브를 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부터 다시 생각을 해 봐야겠다.


얼굴 노출과 장비 걱정은 그 이후에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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