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앞으로 영어면접을 계속 준비할 예정입니다. 영어면접 노하우 자료를 구매를 하려고 하는데 당장 다음 주에 면접이 잡혔습니다. 자기소개만 영어로 해야 하는데 제가 한글로 쓴 1분짜리 자소서 번역이 가능할까요?"
내가 쓴 영어면접 팁에 대한 전자책의 첫 번째 구매가 있은 후 한동안 크몽 사이트는 매우 조용했다. 크몽 앱에 있는 노란 원숭이를 볼 때마다 빨간색 알림이 떠있길 바랬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이페이지를 확인했지만,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었다. 전자책으로 돈을 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처럼 다가왔다.
며칠 전, 초저녁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그리고 요즘 나의 루틴대로 새벽에 눈을 뜨니 3시였다. 하품을 하며 핸드폰을 봤는데 이게 웬일? 크몽에 빨란 알람 표시가 떠있었다. 놀란 마음에 얼른 메시지함을 확인해 보았다.
자기소개서를 영어로 번역해달라는 문자가 밤 10시 반에 와있었다.
"이 사람 뭐야"
갑자기 기분이 좀 나빴다.
예전 직장에서 나는 보고서, 이메일, 자료 번역을 많이 했었다. 집중력이 많이 부족한 나에게 번역일은 인내와 고뇌의 연속이었다. 뇌가 혹사당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이때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번역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당시 그 회사에 있을 때 내가 직접 쓴 이메일로 업무를 해보는 게 소원이었다.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번역자료에 허덕이고 있는데 누군가 메일을 번역해 달라고 하면 울화가 치밀었다. 번역이 쉬운 줄 아나?
내 뇌는 폭파되기 일보직전이었다.
다행히도 그때의 쓰라린 경험 덕분에 프리랜서 번역가가 나와는 절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런 상태의 나에게 번역을 해달라고 하다니. 갑자기 욱 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크몽에는 자소서 번역을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선뜻 거절 문자를 보낼 수가 없었다. 조용하던 크몽에서 오랜만에 받은 알람을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순간 이 사람은 내 고객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산자니까, 서비스 제공자 마인드로 가야 하나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크몽에서 서비스를 구입을 하기 전 해당 후기를 읽고 구매 여부를 결정짓는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후기가 절실했다.
답을 보내기 전 문자를 보낸 이 분에 대한 가상 고객 분석을 해보았다.
1번: 당장 다음 주에 영어면접이 잡혔는데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절약형.
이 분도 어쩌면 고민에 고민을 하다 에라 모르겠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수도 있다.
2번: 대놓고 뻔뻔한 스타일
이렇게 두 가지 타입을 설정해 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냥 번역해주면 되지 뭘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나 싶기도 했다. 이런 내가 쪼잔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자를 보낸 이 사람이 어쩌면 도움이 절실하다는 생각에 무게가 갔다. 아니 그렇게 나를 설득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000님. 다음 주에 면접이 있으시군요~제가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번역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를 보내주시면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애써 쿨한 척 새벽 세시반에 답장을 했다.
오후 늦게 알람이 다시 떴다.
"감사합니다. 1분 자기소개 한글 스크립트 보내드립니다. 피드백 주시면 자료 구매 진행하겠습니다"
뭐? 피드백을 해달라고? 번역만 해달라는 거 아니었나? 구매도 안 하고 번역부터 해달라고? 갑자기 크몽 서비스 절차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구매확정 후 서비스 진행? 아니면 서비스 진행 후 구매?
다행히 메시지 창에 뜬 자기소개 글은 400자 내외 정도였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글자 수가 적어서 금방 번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확인 후 연락드릴게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을 했다.
이분의 자기소개서를 읽어보니 직장인 3년 차에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려는 사람인 것 같았다. 딱 봐도 정신없이 급히 써 내려간 글을 보니 수정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요리조리 문장을 재배치하고, 쓸데없는 표현은 삭제했다.
어느새 이 분의 자기소개서에 집중을 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똑딱똑딱 내용을 고치고 번역을 하니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있었다. 고친 내용을 워드에 깔끔하게 정리한 후 PDF로 발송했다.
몇 시간 후 그분에게서 잘 받았다는 감사의 인사가 왔다. 그리고 결제를 했다고 했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문자가 오자마자 크몽에서 서비스를 제공하세요!라는 알람이 떴다. 그제야 내 영어면접 팁 전자책을 그분께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다. 서비스는 선결제 후 서비스 제공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후기에 별 5개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동안 크몽에서 자기소개서 번역이나 첨삭을 해 준다는 서비스를 많이 봤었다. 나도 한번 해볼까? 싶었지만 겁이 났다. 나는 내 자기소개서만 열심히 봤지 다른 사람들의 자소서를 첨삭해 준 적은 없었다. 번역 서비스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 분의 자소서 번역을 해보면서 아,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겠구나라는 해보지 않은 서비스에 대한 간접체험을 해보게 되었다.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경험 하나를 추가했다는 기쁨은 있었지만 번역 서비스를 할지 안 할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