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둘러싸여 있던 그 소녀
고양이 캐릭터 선물을 샀다
손녀를 돌보는 일은 걱정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 아이의 명랑한 성격 덕분에 함께 있는 게 굳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 눈에는 마냥 어리고 귀여운 아홉 살짜리 꼬마 소녀였고 같이 놀아주면 되는 거였다.
데이지는 누구를 만나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고 그 아이의 그런 활발한 성격이 너무 부러웠다.
데이지가 ADHD를 앓고 있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첫 만남을 어색해하고 낯가림이 많은 나에게 데이지의 재잘거림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아이의 재잘거림을 계속 들어주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면 샌드위치를 같이 먹었다. 약을 먹고 좀 진정이 되면 뒷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 같이 책을 읽기도 했다. 날씨가 너무 더울 때면 정원 한가운데 설치되어있는 대형 풀에 들어가 함께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삭막했던 뉴욕을 벗어나 펜실베이니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가족과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데이지와의 첫 만남을 생각하다 보니 뭔가를 선물하고 싶었다. 사진 속에 있는 고양이 캐릭터 제품보다 더 이쁘고 귀여운 물건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트박스'라는 문구점에 가서 고양이 스티커, 고양이 볼펜세트, 고양이 마우스 패드, 고양이 양말 등 미국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쁘고 기발한 디자인의 물건을 한 바구니 담았다. 데이지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열심히 고양이 캐릭터 물건을 찾는 와중에 머릿속은 "그녀"에게 어떤 선물을 보내야 하나,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까지 펜실베이니아에 살고 있는 데이지에게 먼저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데이지 엄마와 둘째 딸에게 줄 한국 과자와 마스크팩도 샀다.
국제우편을 보내기 위해 오랜만에 우체국에 들려 종이박스를 사서 사 온 물건들을 열심히 포장했다. 배송비는 10만 원이 훌쩍 넘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낯선 누군가를 내 집에 들여와 함께 산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선물을 보낸 지 일주일 후, 데이지의 인스타그램에 인증사진이 올라왔다.
"Thank you for all of these cat things"
코로나 때문에 미국까지 배송이 한 달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우체국 직원의 말과는 달리 일주일 만에 소포가 도착해서 깜짝 놀랐다. 열심히 고른 고양이 제품을 데이지가 다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Florida 에는 도대체 뭘 보내야 하지? 더 이상의 고민은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