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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나미 Sep 10. 2016

맥주를 마셨다

Bohemia


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마실 때 목 넘김이 시원해지고 목끝이 약간 씁쓸한 맥주가 마시고 싶었다. 

멕시코의 해가 뜨거운 탓이라고 하기에는 나의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그 때는 하루를 치열하게 보냈지만 내게 남은 것은 땀으로 젖은 나의 몸과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싸다니는 

도시락통, 그리고 지갑 만큼 가벼운 가방 뿐이었다.

보상이 필요했다.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노라.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의 퇴근. 

말랑말랑한 그러나 센치한 음악을 들으며 지하철을 탔고, 집 근처 편의점에 도착했다. 

맥주 한 캔과 감자칩 한 봉지.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을 때 반겨주는 건 익숙한 어둠과 창가로 스며 들어오는 달빛이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고, 사람 목소리가 나오는 TV를 보며 맥주를 들이켰다.

아무도 없는 작은 방 한 칸.

그 곳을 채워주는 것은 '당신의 고단함을 내가 지워주리라' 다짐하며 온갖 표정으로 웃기려는 TV프로그램과 

맥주가 전부였다.


어느덧 그렇게 나의 하루가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뒤 

시차 14시간. 이 곳 멕시코에 왔다.


그리고 지금 씁쓸한 흑맥주가 먹고 싶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 하루였지만

그 지난 날들처럼 '오늘 하루 고생했다' 다독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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