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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나미 Jan 06. 2017

주부 1년 차의 회고록

이십 대가 이렇게 갈 줄은 몰랐다.



2016년 1월 2일 한국을 떠났고,

2017년 1월 2일 멕시코에서 신혼을 보낸 지 1년이 되었다.





연애 초반 워낙 많이 싸웠던 우리.

이제는 서로의 영역을 잘 알고 터치하지 않기에

지난 1년간 싸우고 토라지고 했던 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평온하고 무탈한 나날들을 보냈다.


하루하루가 너무 평화롭다 못해

우리 둘 닮은 아이를 잘 기르고 남편 회사 잘 다녀오게 내조하고 나면

내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닌 가 싶을 정도로 

특별한 걱정이랄 게 없는 시간들이었다. 감사하게도.


하지만 '내 일은 하고 살아야지' 하는 사고에 박혀

1 년동안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것 같다.


2016년을 여러 면에서 평가하자면 (100이 최고치) 다음과 같다.


살림 70

내조 70

학점 85

자아탐색 90




전업 주부임에도 불구하고 살림과 내조 점수가 높지 않다.

오빠가 회사를 다니지만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서 저녁 요리를 담당하도록 강제 취미를 부여한 날도 꽤 되고,

내가 설거지가 싫다고 해서 저녁 먹고 나면 항상 남편이 설거지까지 다하고,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내가 복을 다 까먹는다고 복 좀 지으라고 한다.)

초반에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샐러드도 만들고, 배웅까지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너무 빠른 출근시간에 나몰라라 뻗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낮 시간은 혼자 보내기 때문에

나, 가정, 인생에 대한 사유와 독서도 많이 했고, 

온라인 강의도 듣기 시작하면 빼놓지 않고 봐서 실습까지 다 했으니

마냥 놀았다 싶은 한 해는 아니었다.



다만 올해는 회사 일이 많아져서 바빠진 남편을 좀 더 챙겨야겠다.

과일도 씻어서 챙겨 보내고,

아침도 차려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현재 하고 있는 한국어, 영어 과외도 계속해서 유지하고 

올 8월에는 한국어 관련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학점 관리도 잊지 않기.





며칠 전, 그게 벌써 작년이 되었지만 

연말에 한국도 너무 가고 싶고, 이 답답한 곳에서 또 어떻게 1년을 버티나 막막했다.

그래서 투정도 부려보고 했지만 속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내가 한국 갈 것도 아니고 그것도 혼자서 더더욱이 가지 않으리란 것을.

바쁘게 지낸다면 일상의 권태로움에 빠질 여유가 별로 없다는 걸 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아깝다는 것도.



그러나 올해 스물아홉을 맞이하는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가득하고, 혼자서 여행도 잘 다니고, 겁은 없지만 열정은 가득했던 이십 대를 

보내는 마음이 아쉽고, 내 인생에서 다시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아서 무섭다.

지금은 실패했을 때 감내해야 할 크기에 눌려 "도전해봐야지"라는 말이 잘 안 나온다.

익숙하고, 편안한 길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길.


과거를 뒤돌아 보면 늘 그랬다.

혼자 봉사활동이든, 일이든 이것저것 도전한 뒤에 눈물 쏙 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매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런데 또 그만큼 재밌었어!'

 



5년 뒤, 10년 뒤에 나를 돌아봤을 때

또 한 번 그러한 생각이 들길 부디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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