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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Oct 13. 2015

꿈 이야기

악몽

깨자마자 이 꿈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기록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든지 겨우 세시간만에 깨버렸는데도 두려움때문에 다시 잠들지도 못하게 하고, 기도하러 집 밖을 나서는 것조차 망설여지게 만든 꿈에 대해서 말이다. 단순한 악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글로 쓰지면 막막하고 벌써부터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지만, 더듬더듬 시작해보자면,


나는 어디론가로 가고 있었고, 내게는 대여섯명의 동료가 있었다. 그들 중 나는 유일한 여자였고, 나는 동료들을 퉁쳐서 그냥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내가 실제로 아는 지인과 닮아 있었으나 실제 그들이 아니였으며, 또 일부는 내가 아는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는 쫓기고 있는 것 같았고,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무능자들이라고 취급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처지를 퍽 딱하게 여기고 있었고, 연민과 동질감을 바탕으로 한 연대감을 서로 가지고 있었으나 함께 한지는 그리 오래된 자들은 아닌 듯 했으며 실상 그 친분이 그리 두텁지도 못했다. 어찌되었던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했고, 어쩌면 쫓기고 있었으며, 무능했고, 억울했고, 그래서 그저 막연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다.


꿈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 알지 못하나, 문제가 되는 사건의 시작은 어느 복잡하고 더러운 레스토랑에서부터였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려는 참이었고, 엘리베이터를 막 타려는 차에 아주 더럽고 빼빼마른 (아마도 가족은 아닌 듯한) 여자와 남자와 아이가 우리에게 달라붙어 팁을 달라고 했다.


팁을 주지 않으려던 것은 아니었고 다만 너무 급작스러워서 준비할 새가 없었던 것 뿐인데, 이미 내 동료들은 그들을 강하게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있었고, 우리가 팁을 주지 않으리라 확신한 그들은 돌변하여 약하고 만만해보이는 나를 공격했다. 나는 다른 이들처럼 그들을 뿌리칠 힘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붙들리고 말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그들에게 수탈을 당했고, 멸시를 받았다. 그들은 더 이상 가난한고 불쌍한 자들이 아니었다. 비열한 자신들의 본색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나는 다급하게 동료를 불렀고, 그래서 동료 중 일부가 급히 나를 엘리베이터로 '구해'왔으며, 나를 수탈했던 더러운 사람들 중 아이가 팁을 포기하지 못하고 어떨결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비록 아이와 나 사이를 동료들이 막고 있었으나, 나는 그 아이와 이 좁은 공간에 함께 있게 됨이 두렵고 황망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진짜 악몽은 거기부터가 시작이었다.


그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아이에 대한 동료들의 조롱과 폭행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순수한 경멸과 적의로,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억울함을 풀고자 하는 엉뚱한 반발심으로, 또 누군가는 나를 향한 호의 이상의 감정으로, 누군가는 순수한 우월감과 그에 대한 당위성으로 아이를 무참하게 조롱하고 때렸다. 아이는 사실 너무 작고 마르고 더러운 아이였는데, 저항할 수 없이 맞아서 구겨지고 뭉개졌으며, 그렇게 맞았다간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지 말라는 내 애원이 그들에게 소용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그 아이는 죽도록 맞는 그 순간조차도 공포에 질렸다기보다는 그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더 약자였던 내게 온전한 경멸을 보내고 있었다.


꼭대기층의 레스토랑에서 지하 1층으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짧은 시간동안 아이는 죽을 지경으로 맞았고, 그 와중에 동료였던 사람들은 다퉜고,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서 내렸다.

그래서 지하1층에서 문이 열렸을 때 남은 건 한두명 밖에 남지 않은 동료와 맞아서 죽었는지 살았지 모르는 상태가 된 아이뿐이었다.

지하 1층에서 우리는 그 아이를 유기하였고 나는 그곳에서 (아이와 마찬가지로) 땟국물이 얼굴에 줄줄 흐르지만, 너무나 선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아이가 어찌되어있는지 모르는 채 밝은 얼굴이었다.


엘레베이터는 다시 지하 2층으로 향하고 있었고,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으나 

다만 저 엘레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면,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든지, 아니면 그 더러운 얼굴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복수를 시작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끔찍했다.


그리고 그 때 마침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어 나올 수 있었다.



만나는 순간부터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후까지도 일관되게 아이가 나를 향해 보였던 순수한 경멸과 적의, 그리고 그 더러운 손가락과 얼굴과 눈이 너무나 생생해서 두려웠고,

수탈과 수탈로 이어지는 고리 속에서 약자가 '더 약자'를 부술 때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 지가 또한 너무나 생생하여 다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꿈에서 우리는 누군가 앞에서 초라한 약자인 동시에 누군가를 밟아 죽일 수 있는 횡포자였고,

그들 가운데 속했던 나 한 사람의 개인은 그 약자의 약자에게조차 일방적인 수탈을 당하고 경멸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약자이기도 했다.


 


희뿌옇게 막연히 인지하고 있던 것이 정말 생생한 현실감으로 다가올 때 피흘리는 귀신이나 살인마가 나오는 꿈보다 더욱 악몽이 될 수 있다.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잔인한 사회성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진짜 현실인 것 같은 느낌, 느낌을 넘어선 어떤 확신 때문에 슬프고 잠들 수가 없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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