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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Oct 07. 2015

나의 고양이

한쪽 귀 끝이 잘린,


버려진 고양이들, 그들끼리의 번식으로 도시에 고양이가 넘쳐나기 시작했을 때,  첫 번째로 시행된 정책은 殺처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죽이고 또 죽여도 끊임없이 다른 영역에 있던 고양이들이 유입되었고, 오히려 더욱 왕성한 번식력으로 그 수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그래서 차선책으로 시작된 것이 죽이지 않되 더 이상 번식하지 못하도록 불임수술을 시킨 후 다시 놓아주는 것, TNR(Trap-Neuter-Return) 이다.

반려동물에게 행하는 불임수술은 
찬반 의견이 나뉘는 이슈이고, 나는 찬성하는 편이다. 도시에서 사람과 고양이가 공존하기 위한 현실적인 공존책 달리 없는 탓도 있고, 사람도 불임수술을 하니 동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특히나 길고양이들에겐 치열하게 영역싸움을 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길에서 살아가는 짧은 3-4년의 생애 동안, 생식능력이  생기자마자부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출산을 반복해야만 하는 것이 저들에게도 또한 고통일 것 같아서. 그렇게 태어난 어린 고양이들에게도 똑같은 가혹한 생이 반복되겠지.

TNR이 된 고양이들은 불임수술이 완료되었다는 표식으로 한쪽 귀의 끝을 자른다. 이미 TNR 된 아이를 잡아다가 다시 배를 가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왜 굳이 귀일까 싶었는데, 그나마 몸에서 가장 얇은 신체부위라 회복이 빠르고, 한눈에도 알아보기 쉬워서가 아닐까. 귀 끝이 잘려나갔다고 해서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을 테니. 
그렇다 하더라도 막상 잘려나간 귀 끝을 보자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사람의 편의로 찍은 낙인이기에.




오랜 자취 생활로 외로움에 지칠 때 즈음 고양이를 한 마리 데리고 왔다. 그 즈음 나는 그저 일상 속에 다른 어떤 생명체가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같은 공간을 나눌 존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 속에는 정말이지 갈 곳이 없는 동물 천지니까. 나는 온기가 필요하고 너는 거처가 필요하니, 잠시 동안이라도 우리 서로 필요한 걸 나누면 되지 않겠니, 하고 생각했다.


처음엔 다른 좋은 주인을 찾아갈 때까지 잠시 동안만 데리고 있을 생각이었다. 십 수년 동안 다른 생명을 돌볼 자신은 없었다. 난 내 인생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걸. 그런데 함께 지내던 어느 날, 이런 확신이 들었다.

내가 생명을 책임질 만한 그릇이 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생애에 단 한 마리의 고양이와 살게 된다면 이 녀석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벌써 사 년째.
 



내게 오기 전에는 사설보호소에 있었다고 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그 동물보호소는 거금의 비용을 받고 고양이들을 돌보았던 것 같지만, 전염병이 돌자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폐업을 하게 될 처지라고 했다. 그 곳의 고양이들은 이미 곰팡이성 피부병이나 귀진드기와 같은 것들로 엉망인 상태였는데, 보호소가 문을 닫자 돌려보낼 주인이 없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길바닥에 버려질 처지 된 고양이들을 누군가가 한 마리 씩 치료를 해서 입양을 보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중 하나가 내게로 온 것이고.


무슨 사연이 있어서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긴 이야기를 묻지 못했다. 애초에 스쳐지나갈 인연일 줄 알고 궁금해하질 않았다. 나중에야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걸 후회했지만, 물었다 한들 그분이라고 자세한 사정을 알았을 것 같진 않다. 다만 잘린 한쪽 귀 끝에서 한 가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유난히 사람을 좋아한다. 집고양이로서 사람과 살기 위해 익혀야 할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사료 외 사람 음식에는 입도 대지 않는다. 이 애는 천상 집고양이인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TNR 표식이 있을까. 길에서 지냈던 것이 분명한 이 애를 굳이 많은 돈을 들여가며 사설보호소에 맡겼던 사람은 누굴까. 그리고서 왜 되찾아가지 않았을까. 잘려버린 귀를 물끄머니 보고 있으면 자꾸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너의 과거를 이야기해다오, 말을 걸고 싶어도 나는 고양이 말을 못하고 고양이는 사람 말을 못하니 그저 추측을 해볼 뿐이다. 처음부터 길에서 태어났을까, 사람과 살다 집을 잃었을까, 길에서는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 어떻게 살았을까, 어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거두어주었던 걸 까, TNR이 된 후엔 또 어떤 사정으로 보호소로 들어갔을까. 어쩌면, 한 번도 길고양이로 살아본 적이 없지만 단지 수의사의 실수로 TNR 표식을 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 고양이는 다정하고, 호기심이 많다. 안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무릎에 올라오는 건 정말로  좋아한다.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물건을 깨뜨리거나 망가뜨린 일이 한번도 없다. 낯선 사람이 오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조용히 다가와 인사를 하고, 이내 그 사람의 무릎으로 올라가 가르랑 거리고 있거나, 그 사람의 물건-가방이나 휴대폰 따위를 꿰차고 앉는다. 신기하게 처음부터 내게 이유 없는 애정과 신뢰를 보내어왔다.

이젠 정말 이 고양이의  지난 날을 알 길이 영영 없어졌지만, 이토록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가 사람 때문에 너무 모진 삶을 살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신뢰할 만한 동거인으로서 계속 함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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