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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Nov 14. 2015

도서관이 좋다

독서광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한다. 

어딜 가서 "책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기엔 독서량이 너무 적긴 하지만, "책"이란 단어에 응당 내포되어 있는 '그 안에 담긴 글자를 읽어 이해하고 공감하는 행위'를 배제하고, 그냥 문자 그대로 글이나 그림이 담긴 종이를 한데 묶어 한 방향으로 펼칠 수 있도록 만든 직방체의 사물을 지칭할 수 있다면,

그래, 나는 그냥 책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책이 많은 공간도 물론 좋아한다. 서점이나 도서관. 딱히 어떤 목적- '이런 저런 책을 구경하고 골라보아야겠다'라든가,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든가- 없이, 그냥 그곳에 켜켜이 책이 많이 쌓여있다는 사실이 좋고, 좋아하는 공간이니까 그저 머무르고 싶어 진다. 


그러나 서점보다는 역시 도서관이 더 좋다. 책을 집어 들며 손때가 묻을까 조심스럽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부담 없이 욕심을 부릴 수 있는 것이 좋다.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 들고서 이걸 살까 말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바삐 인터넷 검색을 하며 지금 이것을 서점에서 바로 사면 집으로 돌아가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보다 얼마나 손해를 보는 것인지 계산할 필요도 없다. 그냥 마음이 들면 집어 들면 그만이다.


물론 도서관에서도 고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번에 대출할 수 있는 책은 보통 다섯 권까지 이기 때문에, 빌리고 싶은 책을 신중히 엄선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다섯 권까지는 마음껏 욕심을 부릴 수 있지 않은가.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렇게까지 욕심 부려가며 책을 골라야 할 만큼 독서량이 많지 않다. 읽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의 크기를 현실이 따라가지 못한다. 매번 책을 신중히 고르면서도 스스로 알고 있다. 어차피 반납기일까지 반도 채 읽지 못할 것이다. 미처 표지 한번 들추어 보지 못하고 반납하는 책도 있겠지.

그러나 매번, 일생에 마지막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는 심정으로 책을 고르게 된다. 




서가를 둘러보는 것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 가리지 않고 무엇이나 곧잘 읽는 편인데, 장르문학도 읽고 순수 문학도 읽고 시도 읽고 소설도 읽고 수필도 읽고 고전도 읽고 현대문학도 읽는다. 문학 말고 실용서도 읽고 인문서적도 읽고 자기 계발 서적도 읽는다. 심지어 사전이나 도감도 좋아한다. 이런 무난한 취향 덕인지, 000번 서가부터 900번 서가까지 재미없는 서가가 없다.


그 안에 채워진 책의 종류를 떠나, 저마다 다른 글꼴과 디자인의 표제로 채워진 서가를 읽는 일은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가 있다. 마치 한 권의 책을 읽고 있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다. 읽혀야만 하는 사명을 타고 난, 누군가의 그러한 염원을 통해 유혹적인 표제와 표지를 갖춘 수천 권의 책이 서가에 꽂힌 채 저마다 나를 보아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사람들은 그 사이를 걸어 다니며, 예리한 눈길로 입맛에 맞는 책을 사냥한다. 사연 없는 책은 없다. 저마다 누군가의 설렘과 추억을 안고 있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 대로 입을 벌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책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서가 사이를 한 걸음씩 오가다 보면, 이 공간이  정적이라기보다는 참 역동적이라고 느껴진다.




내게 도서관은 반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갈 때마다,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책을 고르고, 너무 많은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어휴. 이렇게 읽을 책이 많은데 그동안 뭐하는 데 다 시간을 허비하고 살았담? 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한편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생을 긍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 뭐 앞으로도 시간이 많으니까, 하고 안도하면서. 그럴 때면, 오로지 읽는 일만이 생의 목적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비록 돌아오자마자 책장을 열어보기 보다는 웹서핑에 몰두하는 평범한  인생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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