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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Jun 01. 2019

그냥 안아줄 것을

많은 일을 겪으며 자란 아이는 트라우마를 안은 채 성인이 된다.

치료의 시작은 자기 연민을 걷어내는 것부터였다.

그 마음은 정말 이상했다. 나는 내가 불쌍한데, 그 마음이 불쌍한 나를 보살피지 않고 오히려 극단으로 몰아가 더 비참하게 만들어버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어둠은 걷혔지만 오랜 세월 마음을 웅크린 채 살아왔던 건 아직도 삶에 여러모로 영향을 준다. 좋지 않은 마음의 습관, 어쩌면 병을 발견하고 고쳐 나아가는 건 힘들고 지겨운 과정이었다.

언제나 자책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이젠 내가 변했으니까, 어린 날의 자신을 바라볼 때에

"그렇게까지 방어적으로 마음을 쓸 필욘 없지 않았니 - 하고 조금은 책망하는 마음이,

"아무리 그래도 그때 네가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건 잘못했던 거야- 하고 질책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좀 더 자란 내가 보기에 어린 나는 잘못한 게 너무 많았고 그런 과거의 내가 쌓여서 지금의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게 불만이었던 것 같다(사실 이런 생각은 스스로를 너무 아프게 하는 생각이라 차마 수면 위로 떠올리진 못한채 꾹 눌러두고 있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다시 똑같은 상황이 닥쳐왔다. 이젠 자랐으니까 좀 더 성숙하게 대응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막상 머리로는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옳은지 다 알아도 마음으로는 전혀 쉽지 않아 고군분투였다.

그러다가 내가 어린 날의 자신에게 너무 짜게 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걸 다 겪었으면서도 지난 일이라고 다 까먹고 남의 일처럼 여기며 쉽게 판단했다니. 견뎌내고 통과해 온 것만으로 충분히 장한 것을.

그냥 고생 많았다고 다독이고 안아주기나 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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