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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Jun 20. 2022

하지만 그것보다 많이 웃게 될 거라는 걸

감사할 수 있다.

작년에 내가 잃었던 게 내 고양이와의 유대관계였다면, 이제는 이 아이의 존재 그 자체다.


한꺼번이였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순서대로 조금씩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럴 수 있도록 8개월이 넘도록 씩씩하게 버텨준 것이 고맙다.


그동안 배운 것이 그 어떤 유대감이나 정서적 교감 없이도 존재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법이었다면, 이젠 현재의 상실이 아닌 분명히 실존했던 행복을 기억하고, 그 단단한 기반 위에 서서 나아가는 법을 배워갈 테다.


이제는 아이의 마른 몸 대신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체온을, 잔뜩 예민해져있던 얼굴 대신 햇살아래 평온히 잠들던 모습들을, 내가 사랑했고 충만했던 순간들을 마음껏 마음껏 떠올릴 수 있다. 이제 내 고양이는  시점의 고양이가 아니라, 2012년 4월 어색한 첫만남에서부터 2022년 6월까지 연속된 시간 속의 고양이가 될 테니까.


마지막 8개월이 아니라 건강했던 9년 6개월간의 기억을 하나씩 불러와 오늘 다시 충만해 질 수 있다. 아니 마지막 8개월조차도 행복하고 감사했다. 슬프고 상심한 날들은 아주 잠깐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 아깝도록 행복했던 시간들.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내 마음 속 단단한 반석의 한 모퉁이는 이 작은 털짐승의 몫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러므로 이 기억은 과거로 단절되지 않은 채 현재의 내 일부로 존재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너는 이제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산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면 후회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한 순간도.


모든 순간이 좋았다. 좋기만 했다. 행복했고, 그러므로 오늘을 또 행복할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울기보다는 더 많이 웃게 될 것 같아.


고마워 내 작은 천사.


고생많았어.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고마워.


너도 행복했기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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