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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Nov 03. 2022

그곳엘 가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

엄마는 내장산 단풍을 좋아한다. 엄마와 함께 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정보다. 가을이면 '단풍은 내장산이지' 같은 말들을 하기 때문이다.
작년엔 아버지와 함께 내장산으로 단풍 구경을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차를 되돌려 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느새 성큼 가을이 왔기에, 엄마, 이 계절은 짧으니깐, 우린 부지런히 산엘 가야 해. 했더니, 엄마는 또, 얘 단풍 구경은 내장산이지. 하는 것이었다.

지난주 화요일에 점심을 먹다 말고 문득 달력을 보니 10월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럼 이 달이 지나기 전에 그 내장산이란 곳을 어디 한번 가보자, 하고 휴가를 냈다. 다분히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엄마, 우리 다음 주 월요일에 내장산엘 갈 거야.라고 말했을 때에도 엄마는 좀 시큰둥해 보였다. 사람이 많을 텐데, 아직 단풍이 다 안 들었을 것 같은데, 하면서.

직접 본 내장산의 단풍은 붉은 것이든 푸른 것이든 채도가 몹시 높아서 형광빛에 가까웠다. 특히 내장사 입구로 들어가는 길의 단풍 터널은 몹시도 낭만적이고 서정적이었다. 아직 붉은색으로 온전히 물들지 않았는데도 충분히 좋았다.

엄마는 그 길을 걸으며, 40여 년 전 아직 결혼하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놀러 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 터널이 온통 붉었다고, 그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가을이면 생각이 나곤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걸으니 내 눈에도 불타듯 붉은 단풍터널이 점점 선명하게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얼마나 좋았으면 세월이 흘러 아가씨가 엄마가 되고 다시 할머니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매년 가을이면 생각이 났을까. 그토록 좋았던 곳을 다시 찾기까지는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매년 무심히 넘겼던 말들 뒤로 숨어 있던 이야기는 현장에 와서야 비로소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무심히 흘려듣는 많은 말들, 그 뒤에 숨은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세심하게 귀 기울여 야만 들을 수 있는 보석 같은 이야기들.

내겐 이것이 또한 소설 같은 경험인지라, 나도 아마 매년 가을이 오면 이 길과 그 위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아직 푸르고 노란 단풍터널 위로 겹쳐서 보이던 새빨간 단풍터널이 계속 생각나게 되리라. 어쩌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매년 딸에게 또는 손녀에게 내장산 단풍이 좋다고  되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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