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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Jun 19. 2022

네가지 소원

안녕, 내 작은 고양이

외로움에 못 이겨 아이를 데려왔을 때 막연히 바랐던 것은, 언젠가 떠나보내는 날이 온다면 그 날엔 혼자는 아니기를. 그것이 첫번째 소원이었다.


그 때는 십 년 후 엄마와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엄마가 마지막을 함께 해준 건 내게도 다행인 일이었지만, 지난 2년간 엄마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 있었던 것. 그것은 야옹이에게도 행운이었다.


아이가 처음 쓰러졌을 때,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홀로 돌아왔던 밤, 그날의 내 두번째 소원은, 더 바라지 않겠습니다. 딱 한번만 안아보고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이건 너무 급작스러워요. 언젠가 때가 되면 헤어져야 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는 아니에요.


아이는 이튿날 살아 퇴원하였으므로, 두번째 소원이 이루어졌다. 몸을 가누지 못해 침대에서 함께 잘 순 없었으므로, 거실 바닥 누워, 언제나처럼 끌어안고 잠들었다.


아침이 밝고 약기운이 떨어진 탓인지 몹시 힘들어 했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꾸만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대는 것 밖에 없었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요. 원래 이런 건가요.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방법은 없나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그러나 딱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러므로 더이상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내가 살려만 달라고 애원해서 너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나. 이런 모습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야옹아, 이제 나는 준비가 되었어. 너무 힘들면 이제 가도 돼.

나는 네가 단 하루만이라도 행복하게 있다가 떠나기를 바라. 그것이 세번째 소원이었다.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회복된 아이는 나를 알아 보지 못했다. 아이는 더이상 사람의 애정을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지난 9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품에 안고 있던 온기를, 내 고양이와의 유대관계를 상실했다.


그래도 좋았다. 아이는 행복해보였으므로. 어떤 때는 아프기 전 보다 더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더이상 인간의 애정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였고, 어린 고양이처럼 마음껏 먹고 마음껏 놀았다.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하게 두었고, 조금이라도 싫어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오직 존재에 감사하는 사랑을 배웠다. 아이와의 다정한 눈맞춤이, 품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운 때는 있었다. 한동안은 괴로워 다른 고양이 사진을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곧 정서적인 교감 따위 아무래도 상관 없어졌다. 너와의 즐거운 추억은 내가 잘 기억하고 있으니까 너는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네가 아직 살아 내 곁에 있으므로. 그리고 네가 행복하므로, 그것으로 족하다. 더 바랄 것없이 나도 행복할 수 있다.


그렇게 8개월을 씩씩하게 버텼다. 언젠가 보내게 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이의 병이 계속 진행중이라는 사실은 매일매일 또렷히 알았다. 죽음은 늘 우리와 동거하고 있었다. 그것을 억지로 외면했던 적은 없었다. 매일 죽음에 대하여, 이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생의 한부분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죽어가는 고양이가 마지막을 얼마나 씩씩하고 행복하게 살아내고 있는지에 대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막연히 이 상황이 계속될 거라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어느새 이전의 습관처럼 아이의 모래와 사료를 대량포장으로 사대고 있었다. 처음 아이에게 죽음의 그늘이 닥쳤던 그날 처럼, 또 마지막 날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올 것이라는  충분히 예상했어야 했음에도, 매일 계속되는 일상에 익숙해져서.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겠노라, 억지로 아이를 붙잡아두지 않겠노라, 순리대로 집에서 보내겠노라, 그렇게 다짐했었다.

아..  나는 그 순리라는 걸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가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아이의 병은 발작으로 시작되었으므로, 아이의 마지막도 결국 멈추지 않는 발작일 것이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험하게 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떠나지는 말아줘. 적어도 마지막 순간 만큼은 평안히 잠들 듯 가길 바라. 이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죽게 둘 수는 없어. 네번째 소원이었다.


피범벅이 되어 엉망인 아이를 안고 뛰었는데, 곧 아이는 말끔해져서 잠이 들었다.

피와 오물도 깨끗히 닦아주셨고, 그동안 깍아줄 수 없었던 발톱도, 오래 묵은 피지도, 치료하지 못하고 방치할 수 밖에 없었던 상처도 모두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약에 취해서건 뭐건, 더이상 발버둥 치지 않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적어도 이젠 네가 고통스럽지 않겠구나. 그게 몹시 안심이 되었다.


아이는 입원해 있는 중 많은 시간 잠을 잤다. 더이상 약이 들지 않으므로 억지로 재우는 수 밖엔 달리 도리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아픈 이후로 좀처럼 푹 자지 못했던 아이가 모처럼의 길고 깊은 잠을 자게 되었던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엔 약이 없이도 노곤노곤 졸고 있었다. 귀찮게 여기 저길 쓰다듬어도 성질 부리지 않고 새근새근 깊은 잠을 잤다. 그 평온한 모습이 감사했다. 아이의 고통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이대로 잠든채 스르르 떠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보았다. 몹시 따뜻했다. 화내지도 않고 가만히 안겨 있었다. 이 감각이 왜이렇게 새삼스러울까. 아픈 아이 같지가 않게 느껴질까,했더니 팔개월만이었다.


평온하게 아이를 보냈다. 그렇게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졌다.

곁에 온지 10년 2개월을 채우고 6일만에 내 생애 하나뿐인 고양이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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