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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Apr 06. 2023

은폐된 죄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 중 두 가지를 죄로 새롭게 규정했다.

한 가지는 잘 끊어지지 않는 정서와 사고에 대한 것이었고 또 한 가지까지는 습관에 대한 것이었다.


죄에 대해 말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각자가 씨름하고 있는 죄가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처음 예수를 만났을 때만큼 자주 이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각자의 씨름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하던 그 씨름들은 어느새 그냥 멈춰졌고, 그런 줄도 모른 채 그냥 사는 것 같다.


성숙한 그리스인들이 아직도 죄 문제로 싸우고 있다는 건, 일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수치스럽지 않은 아니다. 덕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던 것도 같다. 또한, 어떤 죄들은 실제로 그 영혼에 미치는 영향과 무관하게 겉으로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여서, 그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나누는 것이 자칫 율법주의나 금욕주의처럼 비치거나, 더 약한 영혼들에게 공연한 정죄감을 줄까 우려가 되었을 수 있다.


결국 공동체에서의 대화 주제는 다른 연약한 사람들의 문제와 고민들, 그들에 대한 양육과 교육, 봉사와 같은 것들에 치우치게 된다. 개인적인 기도제목이라고 털어놓아보아야 건강이나 인간관계 문제들, 진로나 감당하고 있는 과업에 대한 이야기에 그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죄를 은폐하는 삶이 된 것이고, 그 은폐는 의도적으로 의인인 것처럼 장하려 함이 아니라 스스로 죄 문제를 깊게 인식하고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점점 더 죄에 무감해지는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른다. 소위 성숙하다고 불리는 그리스도인들이란, 겉으로 문제가 불거질 정도로 작용하는 굵직한 죄악은 이미 정리가 되었거나, 애초에 그런 문제를 겪어본 적 없는 모범생들이기 마련이고, 자신이 유독 자주 범하는 죄의 유형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그것을 다루는 것에도 어느 정도 능숙하기 마련이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나쁜 습관과 같은 것들을 심각한 죄가 아닌, 그저 개선해야 할 삶의 양식 정도로만 여기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가.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해 논하지 아니하면 무엇을 말한단 말인가.


결국 우리는 좀 더 안전한 편을 택한다. 추상적인 죄에 대해서 말하고 그것을 덮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에 대해 말하지만, 자신의 폐부를 찌르는 그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죄라면 조금 더 안전하게 공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출애굽의 간증은 지겹도록 반복된다. 과거에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얼마나 죄인이었는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오늘, 지금 자신이 섬기고 있는 우상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혹은 다른 사람들의 죄 뒤로 숨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어린 영혼들의 게임 중독은 심각한 죄로 규정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대수롭지 않게(그저 상대방의 공감을 사기 위해 오픈할 수 있는 사소한 허물 정도로) 넘기고, 어린 영혼들의 유흥이나 연애는 불순종으로 여기지만, 정작 자신들이 이성과의 관계를 선명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우정이나 섬김으로 위장하고 있는 건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현상을 드물지 않게 본다. 그러니 교회가 위선으로 가득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일 게다.


어찌 그러한가. 우리 구원이 완성되었는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은혜를 알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자의 지위에 오르고 나면, 더 이상 죄와 씨름할 필요가 없어지는가?


그 모든 질문에 우리는 배워온 바, 신학적으로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인격도 그렇게 대답하고 있는가.


과거의 죄, 과거의 구원,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오늘의 죄, 오늘의 구원, 오늘의 영광은 무엇인가.

남의 죄, 남의 구원이 아니라, 나의 죄, 나의 구원은 무엇인가.

무엇하나 똑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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