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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Apr 03. 2023

당신이 내게 베풀 은혜

요즘 들어 이 말을 종종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것을 하도록 허락함이 당신이 내게 베푸실 은혜입니다." 혹은, "당신의 필요를 내게 청함이 곧 당신이 내게 베풀 은혜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이 편하길 바라며 하는 공연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진심입니다.


주는 마음보다 받는 마음이 더 큰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섬김과 사랑이라는 게 온전하거나 변변한 것이긴 어렵습니다. 변변찮은 최선을 건네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받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그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줄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임과 거절의 두려움이 반복되다가 완전히 굳어져버리지 않으려면, 부족한 것일지라도 끝없이 내밀며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손을 내치지 않은 수용과 사랑 덕에 얼어붙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준다는 건, 그저 조금의 시간과 정성, 이미 가진 것을 떼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자발적인 선택이고 자기 영역이 침범당할 일 없는 안전한 행동들입니다.


하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경계를 허물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때로 그것은 별로 달갑지 않은 내용과 방식일 겁니다. 사소하게는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내어주는 것일 수 있겠고, 어떤 때에는 정체성과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불시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침범해 들어오는 무언가를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니 언제나 주는 쪽보다는 받는 쪽에서 더 많은 불편함을 감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원치 않는 빚을 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표현을 빌리자면, 꿔주고는 살아도 빚지고는 살지 못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인 법이지요.

그렇기에 기꺼이 사랑의 빚을 진다는 것은 깊은 겸손과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어 기껍게 사랑을 받아주는 사람들을 고마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하물며 사랑과 도움을 청하는 것은, 그만한 깊은 신뢰의 표현이 어디 있을까 습니다.


사실 주는 일도, 받는 일도 다 때가 있습니다.

주는 일보다 받는 일에 저울이 현저히 기울어진 삶의 시기는, 대게 하나님이 그 인생에 허락하신 아주 짧고 특별한 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결국 다 지나가는 때인 것입니다.

그 짧은 고난의 때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영광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 중에 곁을 허락함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은혜입니다.


부족할지라도 거절의 두려움을 넘어 표현하는 일,

내게 사랑을 베풀 기회를 허락해달라 청하는 일,

불편할지라도 상대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주는 일, 나아가  사랑을 달라고 청하는 일.


이 모든 사랑의 일들을 태어날 때부터 잘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참으로 사랑으로 충만한 것이겠지마는, 보통은 그렇지 않기에,

대개 우리 삶은 두려움과 쭈뼛댐, 외로움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기에, 이 모든 것은 살아가며 배워갈 훈련의 영역으로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사랑을 배우고 익혀가도록 남겨진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서툰 사람으로 태어나,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도록 성장했다면 그것은 살아오며 무수히 입은 사랑과 은혜의 증거입니다. 제 속에서 일말의 다정함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본래 저의 것이 아닙니다. 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심어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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