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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Apr 10. 2023

가족모임

매주 가족모임을 한다.

몇 번째인지 헤아려 보기를 오래전에 포기한, 가장 최근의 가정 해체 위기를 넘긴 이후에 생긴 규칙이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함께 살면서 겪는 불편함과 짜증스러움을 털어놓고, 그런 마음의 원인을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렇게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쉬운 변화가 없을지 찾아본다. 그리고 약속한 것들의 이행상황을 함께 점검한다.


어떤 건 금방 좋아지고, 어떤 건 수주가 지나도 진척이 없다.

작은 변화라도 환호한다. 이 나이에 변하는 일이 쉽냐고, 이건 매우 존경스럽고도 기적적인 일이라고 치켜세운다.

진척이 없는 사안들은, 책망하지 않거나 밀어붙이지 않는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해 본다.

좀 더 쉬운 미션을 제시해 본다. 그 조차도 되지 않는다면, 이제 미션을 주체를 바꿀 타이밍이다. 상대방이 잘 되지 않는 건 다른 사람이 도우면 그만이다.


나는 분위기를 가장 예민하게 살핀다.

자아비판 같은 분위기로 가지 않거나, 상처로 왜곡된 심상이 비난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자주, 의식적으로, 이것은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더 나아질 방안을 찾기 위한 자리라고 선언한다. 누군가의 잘못을 뜯어고치려는 게 아니라, 그저 함께 서로의 마음을 돕는 일일 뿐이라고.



그동안 정신과며 상담센터로 등을 떠밀어 보내보기도 하고, 좋은 상담자를 수소문해 소개해보기도 하며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그 역할은 나의 몫으로 남겨졌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주일을 비울 수가 없어서, 가족을 향한 애틋함과 설움을 삼키며, 꾸역꾸역 내 자리를 지켜야만 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에 간구했던 기도의 제목은,

주님, 내가 여기, 이곳에서 당신의 양을 먹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내 가족에게 목자를 보내주세요.


그것이 우리의 거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돌고 돌아, 내 가족은 내 양으로 내 품에 안겨졌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매번, 시작할 때마다 막막한 기분이 든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전혀 알 수 없는 채로 시작한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아, 할 말 없는데, 그런 볼멘소리로 시작한 지가 벌써 몇 주째다.


그러나 매번 하나님은 대화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트시고, 무언가를 터뜨리게 하신다.

사소한 일상의 불편으로 시작한 대화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뿌리 깊은 정서나 상처를 발견하는 일로 이어진다. 더욱 감사한 것은 그때마다 문제를 앎에서 그치지 않고,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함께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가령 누군가의 고장 난 정서나 사고의 고리를 발견했을 때에, 이것은 당사자가 스스로 고쳐가야 할 영역인가?  아니면  좀 더 좋은 때를 바라며 아직은 상대방들이 수용하고 기다려주어야 할 영역인가? 당사자가 변화하기 위해 시도해 볼 수 있는 가장 작고 효과적인 미션은 무엇인가?또한 당사자의 마음이 좀 더 편안할 수 있도록 상대방들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런 질문에 대한 답들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어 갔다. 함께 공감대를 이루면서.


매주, 한차례도 빠짐없이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그 모든 과정이 몹시 자연스러워서,

질문을 하고, 대화를 유도하고, 관점을 제시하고, 결단을 촉구하고, 미션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긴 하지만,

그저 누군가의 입이 필요하니 그 역할을 한다는 느낌일 뿐, 무엇 하나 내 의지나 능력이 개입된다는 느낌이 없다. 그럴 능력이 실제로 없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살게 된 동안 해볼 수 있는 갖은 인간적인 노력을 다하고 난 다음에, 마침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도 없어서, 이 자들을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이제부터는 아버지의 영역입니다, 하고 완전한 백기를 든 이후의 일이다.

나는 항복을 선언한 자답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 무슨 일을 해 가시나,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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