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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Apr 28. 2023

너는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느냐고

연말에 대표님을 찾아가 드린 말씀은 이런 것이었다.

소속 변호사들이 메뚜기처럼 철마다 옮겨 다니는 이 시장에서 그저 급여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바라시는 능력 있는 변호사들을 붙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하실 수 있어야 한다고.

생존 이상의 가치는 무엇이냐고.


오늘은 대표님들이 되물었다.


너는 어떤 변호사이고 싶느냐고.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느냐고.


마치 네 꿈에 얼마든지 보폭을 맞추어주겠다는 듯이. 한없는 관용으로.


내겐 그 질문들이, 몇 달 전 당돌히 요구했던 것에 대한 화답처럼 들렸다.



그럴싸한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리더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경영진을 보좌하면서 그들의 철학을 구현시키는 일이 나의 업이었다.

내겐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이 직장에서 만난 나의 상사들에게도 같은 걸 요구했다.

당신의 비전와 철학은 무엇이냐고.



그러나 오늘 받은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류의  화답이었고,

그래서 감사했다.


애초에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이 흔치 않다. 더구나 상사로부터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물려 있어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건 그저 사적인 관계에서의 대화와다른 무게를 갖는다.

애초에 나는 피고용인일 뿐이지 않는가. 내가 고용주의 입맛을  맞추어 드려야지, 고용주가 내 이야기에 경청할 이유는 사실 없다.


멋진 비전을 제시하고 나아갈 방향성을 짚어주는 리더, 훌륭하지만.

응당 그래야만 하는 자리라고 믿어왔지만.


언젠가 내가 그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엔,

그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려 애를 쓰기보다

그저 눈높이를 맞추며 너의 소망은 무엇이냐고 묻는 편을 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경험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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