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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May 17. 2023

각자 할 일 하는 거지, 뭐.

요즘은 여간해선 전전긍긍하는 일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영역이든,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일이건.


애쓰는 것만큼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 삶은 익숙합니다.

내 몸뚱이 하나 체지방 좀 빼보는 일도 이렇게 어려운데(제 몸 안에서 질량보존의 법칙에 반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물며 인생, 심지어 남의 인생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사랑하는 분들은,

돌아오지 않는 공을 계속 치는 일들, 싹이 나지 않는 땅에 계속 물을 붓는 일들 속에서

혹여 저 혼자 애를 태우고 있진 않은지, 그러다 지치거나 낙심하지 않을지 늘 염려해 주십니다.

요즘은 그런 질문을 받으면 너털웃음을 치며 ‘각자 할 일 하는 거죠. 뭐.’ 하고 말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할 일을 한다는 이야깁니다.

그 뒤엔 ‘(하나님 어찌 일하시건) 내 알 바임?’ 이란 대꾸도 생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어찌 일하시건 그 때와 방법을 알 수 없고, 알 바도 아니니, 그냥 나는 내 위치에서 내 소임을 다하면 족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이니, 딱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긴 하지만,

그리 대꾸하는 제 태도가 어려서 보고 배워왔던 영혼 사랑의 열정이나 신실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 쿨하다 못해 퉁명스럽기까지 한 것 같아서, 어라, 이게 맞나, 하고 스스로 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엔 이 정도의 거리유지가 오히려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충실한 태도를 지키는데에 유익하다는 결론입니다.



선을 넘는 일.

내가 해야 할 영역 바깥 부분, 하나님께 혹은 더 나은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을 영역을 침범했던 일. 나도 모르게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던 일.

또는, 그러지 않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영혼들이나 상황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실망하고 분을 냈던 일.

때로 너무 급한 마음에 혼자 안달복달했던 것. 그러다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 영혼을 아직 인내하고 있거늘, 네가 무엇이건대 이리 인내하지 못하고 안달이냐고. 네가 감히 나보다 더 이 영혼을 사랑한다고 말하겠느냐던 엄한 물음.


충실하지 못함.

멋대로 그렇게 선을 넘나들며 일하다가 혼자 번아웃이 와선, 다 관둬버리고 ‘하나님께만 다 맡겨’ 버리는 일.


뜻이 막히면, 그대로 멈춰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었던 나날들.



어릴 때에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라고 배웠으므로 막연히 그렸던 것은 수직적인 위임관계였습니다.

그러나 내게 위임된 일이 어디까지인지를 구별하는 일이 참 어려웠고,

때로는 나도 모르게 마치 내 생각이 곧 하나님의 생각, 유일한 방도인양 여기는 독선에 빠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생각했던 한 가지 길이 막히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노라'라고 쉽게 단정하고, 이후론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만 떠넘기곤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령 영혼이 권면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이고 더 이상 듣지 않는 사람을 두고 어찌 더 씨름하리오, 마음을 돌리시는 것은 주님이십니다, 하고 그냥 하나님께 내던져버리는 것이지요.

마음을 바꾸어 주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을 잔뜩 안고선.




하지만 요즘은, 수직적인 위임관계보다는 [ 하나님과 동업을 하면서 각자의 역할분담(소위 R&R, Role & Responsibility)을 나누어 가졌다 ]는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감각이 하나님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면서(언제나 내 동업자의 일하실 영역을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내 역할에 충실한 태도를 갖는데 도움이 된다는 느낌입니다(동업자가 자기 일을 한다고 해서 내가 일하지 않고 놀아도 되는 건 아니니까).

내 유능하고 신실한 동업자께서 본질적인 영역을 다 감당하실 테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대로 내 할 일을 찾아서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는 정서가

더 주도적으로 다음 대안을 찾게 만듭니다. 
본질적인 문제 해결과 멀어 보이는 사소한 일이라도 찾아내 거드는 일 지치지 않고 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해결은 하나님께 맡겨둔 채, 나는 좀 더 작은 일들, 오늘의 작은 신음들에 응답하는 일에 매진하는 법을, 요즘은 배워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치지 않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감사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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