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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May 07. 2023

거울

날 때부터 공감지능이 높게 태어나 역지사지는 배우지 않아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큰 착각이었다는 걸 제자들을 섬기면서 알았다.

나를 섬기는 어른들의 마음을 반푼도 알지 못했다는 걸, 나도 거꾸로 내 영혼들을 사랑해 보면서 알게 되었다.

가끔은 버거운 부담으로까지도 느껴졌던 그 사랑과 애틋함을 기꺼운 감사와 겸손으로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고 난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좀 부족해도 빨리빨리 교사든 리더든 세워지는 게 당사자에게 유익인 것..!


부모님의 사랑 역시도, 지금 아무리 다 알고 있다고 넘겨짚는 부분이 있다 하여도, 결국 그 깊음은 스스로 아이를 낳아보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알게 될 테지.


아이들에게 하는 조언이 스스로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때가 많다.


인생이 참 안 뚫려서 버거워하는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얘, 참 이상하지 않니.

네가 인생에게 바라는 게 내 눈에도 대단한 욕심은 아닌 것 같은데, 하나님은 왜 너에게 고작 그런 평범한 삶조차 허락하지 않으시는 건지.

넌 모든 영적인 숙제들을 일단 이 단계를 넘어선 다음, 네 삶이 좀 더 안정되고 정상화된 다음으로 미루고 있지만, 하나님이 이토록 집요하게 네게 다음 단계를 허락하지 않으실 때에는, 지금 이 시점에 기필코 네게 받아내고 말아야 할 어떤 고백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니. 그것은 네가 하염없이 미루고 있는 것들 중에 있지 않겠니.


그다음 상담에서 아이와 나는 그 아이 인생에서 풀어가야 할 몇 가지 숙제를 확인했고, 그 숙제들을 해결해 가는 동안 지낼 임시정거장 같은 자리를 달라고 간구하기 시작했다. 이미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소망을 잃어버렸던 아이는 기도를 시작할 때만 해도 냉소적인 태도였는데, 우습게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가장 알맞은 자리가 주어지자 어이가 없다는 듯 쑥스럽게 웃었다.


그 애의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질문은 내게도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내 인생에도 좀처럼 풀리지 않고 정체된 영역, 막연한 기다림에 있는 영역이 있으니까.

내게도 받아낼 고백이 있으신 것이 아닌가.

끝내 내 입에서 그 고백을 받아내기까지, 하나님은 꿈쩍하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던 게 아닌가.


짚이는 부분이 있고,

지금은 그 답이 맞는지 맞추어보는 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응답을 받은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기적처럼 열어주신 자리, 숙제 풀라고 허락하신 자리에서 열심히 숙제를 풀기 시작했을까.

어림없다.

어떤 때는 조금만 더 있다가요, 조금만 더 적응을 하고요, 하고 미루기도 하고,

또 때로는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구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듯 굴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인 것이다!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른 법.

다만, 아이가 마음 한편에 숙제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는 건 알고 있기에, 재촉하지 않고 잠잠히 기다리고 있다.

그래. 좀 천천히 시작해도 괜찮아.


다만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다르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기꺼운 고백으로 드린 다짐은 갈망이 해소되었을 때에 수증기처럼 사라지게 되겠지. 그때에 여전히 남는 것은 오직 몸으로 숙련된 삶의 양식일 뿐이다.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에서 좀 더 나아간 삶, 일회적인 헌신이 아니라 일상이 된 삶의 양식을 요구하시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이 어린 영혼보다는 조금 더 책임 있는 고백을 드려야 할 입장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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