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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May 19. 2023

생각의 쓰레기통

건강해지려, 체중을 감량하려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결국 달리기가 그 자체로 좋아져 버린 것처럼,

근육통을 좀 덜어볼까, 바른 자세를 갖고 싶어 발레를 시작했지만 그냥 발레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새벽기도 역시 그 어떤 효용이나 유익을 따질 필요 없이 그냥 그 시간 자체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당연히 유익은 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면이라면,

기도 중에 그동안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 문제해결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얻게 된다는 점인데,

그게 꼭 기도제목으로 마음을 먹고 가지고 가는 영역에 대한 화답은 아니고 그냥 무작위로 막 던져지는 것인지라

보통은 매일 아침 두세 개 정도의 랜덤박스를 소소하게 선물로 받아가는 것 같다.



생각을 간명하게 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여겨왔다. 가장 난감한 질문이, 요즘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 안 한다고 대답하면 성의가 없는 것처럼 보일 같은데, 정말로 골똘히 뭘 생각하는 일 없이 살아가거든.

실익 없는 논의나 고민으로 에너지 빼는 걸 무용하다고 느끼고, 그걸 하지 않는 게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어떤 생각으로 인해 괴로워본 일이 별로 없었다.

다만, 어려움을 겪는 건 주로 감정 쪽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이든 생각은 선명히 착착착 정리가 되는 편인데 감정은 그렇지 않아서.


그런데 오늘 새벽엔, "감정"이라고 대충 뭉떵그려놓은 것들 뒤로 생각이 숨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감정들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고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은 생각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감정과 생각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인데도, 나는 대개 한 면만 보고 있었던 것.


그리고 생각이 정말로 없는 게 아니라, 실상 하루를 보내는 동안 의도하지 않는 많은 상념들이나 상상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데도,

동의하지 않거나 수용하지 않는 생각들,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지 못해 실익이 없는 류의 것들은  미처 "생각"으로 지각을 하질 못했던 것 이라는 점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게 지각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된 생각들 중에 어떤 것들은 어떤 감정의 뒷면에 달라붙어 몰래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있다는 것도.


마음속에 쓰레기통 이미지가 떠올랐다.

조금 유치하지만 어떤 생각들을 쓰레기통에 파쇄해서 넣는 상상을 한다.


지각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무의식 뒷단에서 계속 돌아가면서 나를 소진시키지 못하도록,

그 생각의 존재를 지각하고, 의도적으로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상상.


그것만으로도 통제되지 않던 잡념들, - 그동안 감정의 영역이라고 뭉뚱그려왔던 부정적인 것들이 많이 해소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새벽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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