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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Jun 14. 2023

태도와 인격

아침 일찍부터 걸려온 전화는 사과전화였다.


어제 통화를 했던 의뢰인이었다.

법원에서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강제조정권고가 내려올 것 같다는 설명을 드리려 먼저 전화를 걸었는데, 그 내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지  <내가 겨우 그깟돈을 받자고 변호사를 산게 아니다> 며 소리를 질렀었다.


당장 수천, 수억의 손해가 눈 앞에서 오가는 상황에서 의뢰인들이 앞뒤 분간없이 일단 소리부터 지르는 것은 어쩌면 흔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닌지라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는 당신 편이고, 그런 표현들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산다>는 표현이 엄연히 존재하니 <변호사를 산다>는 표현도 굳이 따지자면 대단히 잘못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당사자의 면전에 대놓고 <샀다> 라는 표현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운운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이건 좀 무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네네, 억울한게 많으시죠, 하지만 저는 물건이 아니니까 <샀다>는 표현이 적절한 건 아닌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한마디 덧붙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 있다.


아침 일찍 다시 전화가 오기에 받았더니, 정중한 사과전화였다.

<변호사님인 줄 몰라서 그랬다>며. 몇번이고 깍듯하게.


잘 모르셔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걸까 싶어 정정해 드릴까 말까, 몇번이나 고민하게 만들었던 <변호사를 샀다>는 표현은 아무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도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샀다>는 말 대신 <선임하였다>는 표현을 정확하게 사용할줄 아는 분이었더라구.


정작 어제는 별 감정이 없었는데, 아침부터 그 깍듯한 사과, 특히 몇번이고 반복되던 <변호사님인줄 몰랐다>는 변명을 듣고 있자니, 오히려 불편해지고 말았다.

이 사람은 내가 실제로 느낀 것보다 훨씬 더 자신의 태도를 무례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었고, 그런 무례가 직원에겐 허용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었으므로.


<상대방이 변호사가 아니라 직원이어도 그러시면 안되시지요>라는 말을 할까 말까 또 고민을 하다가, 이 사람이 그렇게까지 결례를 하였던가, 정작 어제 나는 그런 훈수를 둘만큼의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는데, 싶어서 결국 말을 삼킨 채 그저 <아 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단순히 <사람이 아닌 상황에 대한 거친 표현>이라고 여기며 무례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의 언행은, 실은 상대방이 명확하게 특정된 <사람을 향한 표현>이었던 것이다. 단지, 그 상대방이 변호사가 아닌 직원이었을 뿐.



가능한 자주 의뢰인들과 직접 소통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종종 의뢰인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곤 한다. <ㅇㅇㅇ 변호사입니다~> 하고 신분을 먼저 밝힘에도 불구하고, 통화의 첫마디는 건성으로 듣기 마련인지라, 법무법인에서 웬 젊은 여자가 전화를 거니까 송무직원이려니, 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덕에 그 사람의 민낯을 보게 된다.


비슷한 일을 변호사가 되기 전, 회사에서 평직원으로 일할 때도 자주 겪었다.

대기업이라고 해도 비서들은 임원들의 업무만을 지원할 뿐이라, 자잘한 행정처리나 보안절차도 실무자들이 직접 처리하게 되는데, 다른 부서의 요청을 받고 방문한 신규 거래선 담당자의 NDA 체결이나 서류 반출 절차를 도와주다 보면 자신의 행정처리를 도와주는 젊은 여자는 당연히 비서인 줄로 오해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비서로 오해받았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그 미묘한 무례함과 하대가 있었다.

그런 무례를 겪고 나면, 다음에 우리가 협상테이블에서 다시 만나게 될 때에, 자신이 하대하던 그 직원이 사실은 비서가 아니라 자신의 계약조건을 쥐고 필 카운터파트너라는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혼자 상상하며 분을 풀곤 했는데,

안타깝게도 무례하게 굴었던 그 사람들이 결국 본격적인 계약 단계까지 올라와 협상테이블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일, 그래서 복수에 성공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면 그 인격이 모자란 자에게 협상테이블에 앉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더 통쾌하게 여겨야겠다며 혼자 속으로 웃곤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간 걸 보면 어지간히 분했던 게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겪었던 무례는 대개 상대방이 내 지위를 오해한 탓이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오해 없이도, 이런 무례를 일상적으로 겪으며 살아갈 것이다.

소심한 복수를 꿈꿔볼 기회도 없이.


반평생을 저학력 공장 노동자로 생계를 부양했던 엄마는 가끔은 분에 차서, 또 가끔은 탄식하듯이 그런 말을 반복하곤 했다.


ㅡ 너희들은 우리 같은 밑바닥 인생을 모른다.


가난이라면 우리가 함께 겪은 것이었으므로 그 <밑바닥>이 지칭하는 것은 가난이 아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얇퍅하게 달라지던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ㅡ 우리는, 사람 대접을 못 받았어.



인격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는가는 내가 형성할 인격의 바탕이 된다. 존중받는 사람은 존중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하지만 사람들은 참 치사하게도,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존중하지 않지.


돌아보면 변호사도, 과장도, 대리도 아니던, 아무것도 아니던 입사 3, 4년차 사원 시절에 가장 독이 올라 있었다.

싸움닭처럼 싸워대고 소리를 지르면서 일하던 때. 몸을 부풀려 기가 센 척, 털털한 척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때. 어떤 불쾌한 농담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오히려 더 센 농담으로 받아치고 싶어서 연구를 하던 때.

직급이 올라가고 지위가 바뀌니, 그 사이에 스스로 유연해지고 노련해진 덕도 있지만, 나를 대우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분명 바뀌었고, 그러므로 그렇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애초에 없어져 버렸다.

좋게 말해도 충분히 존중해 주는데 뭐하려 굳이 나쁘게 말해. 표정만 굳어도 알아서 무례함을 사과하는데 뭐하러 무례함을 받아치는 법을 연구하겠어.




그러므로 지금의 나의 관용과 존중은 어쩌면 내 것이라기 보다는, 타인의 것에 가까울 것이다.

같은 말에 덜 상처받는 것 또한, 타고난 무던함보다는 상대방과 자신의 우위를 형량해 본 약샥빠름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위해를 가할 힘이 상대에게 없다면 그가 하는 말에 휘둘릴 이유도 없으므로.



그러니 뒤집어 말해, 같은 삶을 살아보지 않고 같은 환경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인격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세상을 살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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