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마린 Feb 02. 2018

인간성장의 법칙 1. 모두 같은 템포로 자라나지 않는다

<플립>, 그리고 소년소녀의 성장 법칙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다. 그 의미를 첫 번째 사랑이 아닌 미숙하고 서투른 사랑으로 확대한다면, 즉 풋사랑의 범주로까지 확장시킨다면 나에게도 역시 그렇다. 첫사랑이 완벽했던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 성장의 법칙.
소년은 남자가 되고 소녀는 여자가 된다.
하지만 남자가 되어버린 소년과 아직 덜 자란 천방지축 소녀.
문제는 그 속도가 다를 때 발생한다.

- <응답하라 1997> 中


브라이스 역시 미숙해서 문제지 나쁜 건 아니다. 분명 소년도 한 뼘 자라면 훨씬 속깊고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에서는 괜히 짓궂은 장난을 치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삐딱하게 표현했던 것처럼, 솔직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건 꽤나 자란 후에야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소년과 소녀가 엇갈렸던 이유는 자라나는 속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브라이스가 아직 친구와 가족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줄리는 자신의 생각을 강단있게 밀고 나갈 줄 아는 당찬 아이였고, 소년이 타인의 내면을 미처 보지 못하고 외적인 부분들로만 단을 내릴 때 소녀인간에 대한 통찰을 배우고 있었다. 서로가 몇 년동안이나 함께하면서 제대로 된 '이야기' 를 나누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오해 속에 가려진 모습 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분명 두 사람이 성장하는 속도가 달랐 나아가 살아가는 세계의 크기가 달랐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브라이스가 그 템포를 맞출 수 있을 만큼 성장하면서 둘은 드디어 마주보며 온전히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영화가 성장의 일면으로 제시하는 것은 자존감이다. 어린 줄리에게 브라이스는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늘 그를 따라다니고 예의주시하며 관심받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줄리가 자라날수록 그녀의 내면에서 브라이스가 차지하는 공간은 줄어든다. 넓은 세상을 보면서 더 많은 것들을 마음에 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빛을 찾아간다. 자연에 대한 사랑, 생명의 경이로움, 여유, 추억, 무언가를 해내는 데서 오는 성취감, 이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그 모든 것은 한데 모여 자존감으로 명명된다. 자존감이 높은 줄리는 타인에 매달리거나 연연하지 않는다. 늘 주체적으로 사랑하고 그럼에도 할 말은 확실하게 한다. 브라이스와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자존감을 확립하면서 줄리는 비로소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그녀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더 잘 사랑할 수 있게 됐고,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개인적으로 줄리는 나의 이상향이다. 사실 나는 무색무취의 인간인데, 그게 장점일 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아마 브라이스의 할아버지가 말한 '밋밋한 사람' 이 딱 나일 것이다. 투명하고 있는 듯 없는 듯한 나는 늘 색을 꿈꿨다. 색이 뚜렷하다는 건 개성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명확한 내가 있고 그것이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줄리가 자신의 색을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특히 플라타너스 나무 사건을 겪으며 한 걸음 나아가거나 장애가 있는 삼촌을 마주하고 그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그녀의 세상이 한 뼘씩 넓어지는 게 참 좋았다.



영화에서 'Flipped' 란 단어는 두 가지 의미로 쓰였는데, 첫 번째는 '첫 눈에 반하다' 이고 두 번째는 '확 뒤집어지다' 이다. 첫 눈에 브라이스에게 반한 건 줄리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성장해가면서 결국 마음의 기울기가 브라이스 쪽으로 뒤집어지는 것이 밝고 따스하게 그려지는 영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땅의 청춘들에게 보내는 가장 화끈한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