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꿀단지

길 위에서 길을 묻다

by 진동길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삼천배를 기도를 하시던 큰 스님이 마지막 열 배를 남겨두고 갑자기 배가 아파왔더란다.

하는 수 없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던 스님은 아무 일도 아닌 척했지.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법당을 나와 신발도 신지 못 하고 해우소를 향해 걸음을 떼었단다. 안타깝게도 해우소는 법당에서 멀리 있었어.

그런데 그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단다. 스님과 함께 삼천배를 올리던 신자들이 큰 스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무슨 일인지 스님을 따라 하기 시작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급기야 수 십 명의 신자들이 스님처럼 기도를 멈추고 황급히 법당에서 나오더니 맨 발로 스님을 쫓아가기 시작했지. 그리고 곧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해우소로 갔나요?"

할아버지의 옛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했던지 물었다.

"허허허.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할아버지 빨리 이야기해주세요. 궁금해요."

"그래. 그래. 가만있자. 어디까지 했더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황급히 쫓아갔어요. 그리고는 어떻게 됐어요? 사람들은 왜 맨발로 스님을 쫓아갔어요?"

"그래. 그래. 수 십 명의 신자들은 급하게 스님을 뒤쫓아가면서 소리쳤단다.

'스님! 큰 스님! 혼자 어디로 가십니까? 중생들에게 길을 가르쳐주셔야지요. 그냥 가시지 말고 저희를 데리고 가시지요...!'라고 말이야.

앞서 가던 스님은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지. 차마 해우소에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갑자기 큰 깨달음을 얻어서 그 길을 찾아가노라고 말할 수도 없고, 배는 아파오고..."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허허허... 그래서? 그래서 스님은 더 빠른 걸음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지. 신자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말이야. 그런데 스님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뒤쫓는 신자들의 걸음도 빨라졌단다."

"스님은 왜 그렇게 빨리 달렸어요?"

"이유야 간단하지. 배가 너무 아팠거든... 허허허."

"그럼. 스님은 볼일을 못 봤나요? 마지막에는 어떻게 됐어요?"

"아니. 아니. 아니야. 아직까지도 스님과 신자들은 맨 발로 계속 달리고 있단다."

"아직도요? 거짓말 같아요."

"허허허. 거짓말 같으면 좋으련만... 쯪쯪... 안타깝게도 사실이란다. 오랜 세월 동안 달리고 있지. 서로 다른 연유로 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달리는 이유를 말할 수 없는 스님과 이유도 모르고 그 뒤를 쫓는 사람들이 옛날보다 더 많아졌다는구나... 허허허."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가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은 아닌지. 어디를 가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져볼 수 있기를.

###

옳은 길과 그릇된 길이 있고,
거칠고 고된 길과 쉽고 편한 길이 있다.

화려하고 허상뿐인 길이 있는가 하면,
순박하고 담백한 길이 있다.

형식을 따르는 길이 있는가 하면
본질을 좇는 길이 있습니다.

하루새 가야 할 길이 있고
평생을 두고 걸어야 하는 여정도 있.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
사람이 가야 할 길을.

길 없는 길에서 길을 묻는다.
영원으로 가는 길을.

멀리 가시려거든
지친 어깨 내려놓고
쉬엄쉬엄 가시구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금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