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수사 마리오

길을 묻다

by 진동길


등산을 간다고 나간 꼬마 수사. 기도 시간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광산 등산로는 수도원에서 가깝지만 산 길을 헤매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늘 그렇듯 기도시간 한 시간 전부터 기도하던 야고보 수사는 마리오가 걱정이 되었다. 산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 온통 마음이 쓰인다. 안절부절못하던 야고보 수사가 경당에서 나오더니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수도복을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뻔한 길이지만 행여나 길을 잃지 않았기를 기도하며 등산로 입구에 이르렀을 때, 야고보 수사가 먼저 꼬마 수사를 알아봤다.


어릿어릿하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걷는 품이 많이 지쳐있다. 필경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게다.


"마리오."


야고보 수사가 아직 멀리 있는 꼬마 수사를 외쳐 불렀다.


"네. 원장님."


꼬마 수사가 지친 뒤꿈치를 끌며 달려왔다. 다리가 아픈지 뒤뚱뒤뚱 걷는 꼴이 오리 같다.


"허허허. 천천히 와. 넘어져."

야고보 수사의 얼굴에 걱정이 사라지자 웃음이 찾아왔다.


"원장님. 원장님. 등산길을 잘 못 들어서서 한참을 헤맸어요. 죄송해요. 걱정하시게 해서." 한걸음에 달려온 꼬마 수사가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천만다행이네. 그래도 어떻게 다시 길을 찾았구나."


"네. 혹시나 해서 가지고 갔던 나침반이 큰 도움이 됐어요. 나침반이 없었으면 아직도 길을 찾고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수도 생활도 마찬가지야.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깨어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살펴야겠지?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혹시라도 길을 잃더라도 곧 제자리를 찾아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나침반과 같은 존재는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예. 원장님. 나침반과 같은 존재라 하시면… 말씀과 함께 살아계시고 이끌어주시는 분을 잊거나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이시군요. 동방박사들에게 그 길이 되어주셨던 분 말씀이시죠? "


"한 개를 가르쳐주면 두 개를 깨우치는구나. 허허허. 하느님은 마치 커튼에 가려진 듯.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함께 계신 단다. 그래서 그분은 많은 성인들에게 길이 되어 주셨고, 때로는 나침반처럼 길을 가리켜 주시기도 하셨지만, 사람이 가야 할 최종 목적지는 바로 그분이시지. 그 여정에서 우리는 그분의 흔적인 사랑과 희망, 기쁨과 단순함, 겸손함과 인내와 온순함을 체험하게 되지.그러니 나침반과도 같은 말씀을 잃지 않도록 하거라.


"예... 원장님."


"신뢰의 문제와 다르게 사람은 나침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단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의 본성은 쉽게 정의와 분별력을 잃을 수 있어서…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거나 이념에 치우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스스로 방황하기도 하고 옳지 않은 길을 알면서도 고집하게 되거든. 사람은 진리나 지혜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자신이 진리나 지혜와 다르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지. 결국 지혜롭지 못한 우리는 오류와 편견의 길에서 방황하기 쉽단다. 그러니 가벼운 걸음도 조심하도록 하여라. ”


“중요한 말씀이네요.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도 나침반이 없었다면 지금 가고 있는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삼천배를 기도를 하시던 큰 스님이 마지막 열 배를 남겨두고 갑자기 배가 아파왔더란다.

하는 수 없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던 스님은 아무 일도 아닌 척했지.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법당을 나와 신발도 신지 못 하고 해우소를 향해 걸음을 떼었단다. 안타깝게도 해우소는 법당에서 멀리 있었어.

그런데 그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단다. 스님과 함께 삼천배를 올리던 신자들이 큰 스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무슨 일인지 스님을 따라 하기 시작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급기야 수 십 명의 신자들이 스님처럼 기도를 멈추고 황급히 법당에서 나오더니 맨 발로 스님을 쫓아가기 시작했지. 그리고 곧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해우소로 갔나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꼬마 수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했던지 물었다.

"허허허.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수 십 명의 신자들이 급하게 스님을 뒤쫓아가면서 소리소리를 쳤지.

'스님! 큰 스님! 혼자 어디로 가십니까? 중생들에게 길을 가르쳐주셔야지요. 그냥 가시지 말고 저희를 데리고 가시지요...!'라고 말이야.

그런데 앞서 가던 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 돌아보고는 당황하기 시작했지. 차마 해우소에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갑자기 큰 깨달음을 얻어서 그 길을 찾아가노라고 말할 수도 없고, 배는 아파오고..."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허허허... 그래서? 그래서 스님은 더 빠른 걸음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지. 신자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말이야. 그런데 스님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뒤쫓는 신자들의 걸음도 빨라졌단다."

"스님은 왜 그렇게 빨리 달렸어요?"

"이유야 간단하지. 배가 너무 아팠거든... 허허허."

"그럼. 스님은 볼일을 못 봤나요? 마지막에는 어떻게 됐어요?"

"아니. 아직 끝난 게 아니지. 아직까지도 스님과 신자들은 맨 발로 계속 달리고 있단다."

"아직도요? 거짓말 같아요."

"허허허. 거짓말 같으면 좋으련만... 쯪쯪... 안타깝게도 사실이란다. 오랜 세월 동안 달리고 있지. 사람이 사람을 따르다 보면 이렇게 되지. 서로 다른 이유로 달리고 있으면서도 마치 자신은 진실을 따르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말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달리는 이유를 말할 수 없는 스님과 이유도 모르고 그 뒤를 쫓는 사람들이 옛날보다 더 많아졌다는구나... 허허허."


자신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가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염려로 들리네요.”

“어디를 가고 있는지 스스로 물음표를 던져볼 수 있어야 하겠지. 옳은 길과 그릇된 길이 있고, 거칠고 고된 길이지만 참기쁨을 주는 길이 있는가 하면, 쉽고 편한 길이지만 슬픔과 고통을 주는 길도 있단다. 또 화려하지만 허상뿐인 길이 있는가 하면, 순박하지만 담백한 길도 있지.

형식을 따르는 길이 있는가 하면 본질을 좇는 길이 있을 것이고, 하루 새 가야 할 길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두고 걸어야 하는 여정도 있겠죠?”

“허허허. 마리오도 이제 풍월을 읊는구나. 그래. 그래서 사람은 길 위에서 길을 물을 때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물어야 하고, 길 없는 길에서 길을 물을 때는 영원으로 가는 길을 물어야 해. 멀리 가려는 길. 특히 수도자의 길에서는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말아야겠지. 지친 어깨를 서로 기대면서 쉬엄쉬엄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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