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제자 이야기
산책 나온 애완견처럼 버릿줄에 묶인 배들이 나란히 어깨를 비비며 잠든 바닷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작은 포구 일광 바닷가에 원장 수사님과 산책을 나온 꼬마 수사 마리오.
흰 갈매기와 검은 물닭이 파도를 타고 있고, 그 위로 한 늙은 어부의 아내가 파랗게 멍든 하늘에 홍돔을 걸어두고 있다. 입질 없는 낚싯대 곁을 지키던 누런 나비 한 마리가 게으른 꼬리를 흔들며 사라졌다. 호기심이 많은 꼬마 수사는 지금쯤 단잠을 자고 있을 어부들을 생각하며, 지난밤 풍랑에 시달린 어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요동치는 바다. 풍랑이 이는 밤바다의 이야기. 갑작스럽게 불어온 거센 돌풍으로 흔들리던 조각 배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하게 기우뚱거렸을 것이다. 돛대보다 더 높이 일어선 파도는 배를 덮치며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는데, 어마어마한 파도 그 한가운데 아수라장이 된 제자들의 배. 이미 배를 삼켜버린 파도에 배는 침몰하고 있고 난파되기 직전인데,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배를 바라보던 꼬마 수사의 상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제자들이 탄 배의 크기와 그 배에는 몇 명이 타고 있었을까 더욱 궁금해졌다. ‘앞서 가시는 원장님께 물어보면 아시겠지.’라고 생각한 꼬마 수사는 원장님께 달려갔다.
“원장님! 궁금한 게 생겼어요.”
“그래. 우리 꼬마 수사가 뭐가 그리 궁금할까?” 묵주기도 중이시던 원장님이 걸음을 멈추고 꼬마 수사를 바라봤다.
“풍랑이 일던 날 밤에요. 예수님께서 배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던 날 밤에요. 그 배에 제자들이 몇 명이나 타고 있었나요? 그 배의 크기는 얼마나 되었어요?”
“수사님이 알기로는 1986년에 발굴된 배가 있는데, 돛대를 사용할 수 있는 그 배의 크기가 길이 8.2미터, 폭 2.3미터였단다. 4명의 사공이 노를 저었으며 약 15명이 탈 수 있었다는구나.”
“그럼, 그날 밤에 12명의 제자들만 예수님과 함께 그 배를 탈 수 있었겠네요?”
“마르코 복음이 다른 배들도 예수님이 탄 배를 뒤따랐다고 전하는 걸 보면 12명의 제자들 외에 다른 제자들은 다른 배를 탔을 거야… 아마도… 그래… 아마도.”
원장님이 말꼬리를 흐리면서 바다를 바라보자 꼬마 수사는 말씀 끝에 다른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그 배에는 예수님과 12명의 제자들 외에 다른 사람도 타고 있었나요?”
“허허허. 아무도 모르지. 복음은 더 이상 다른 이야기는 전하고 있지 않으니까.”
“마리오. 그날 밤 그 배에 12명의 제자와 함께 있던 13번째 제자의 이야기 알고 있니?” 바다를 바라보던 원장님이 물었다.
“와! 13번째 제자요? 처음 듣는데요. 이야기해주세요. 궁금해요.”
“그날 밤의 13번째 제자는 지금 마리오가 될 수도 있고, 또 시간과 역사를 초월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 다른 어떤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풍랑이 일던 그날 밤에 그 배에는 12명의 제자 외에 13번째 제자가 타고 있었지.”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인가요?” 근거가 있느냐는 뜻으로 꼬마 수사가 물었다.
“허허허. 그럴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지. 아무튼 그 제자는 예수님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는데, 목동 출신이었단다. 그리고 그날 밤 풍랑이 배를 집어삼킬 듯이 몰아치는 밤에도 예수님 옆에서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단다. 또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다른 제자들은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는가?’ 라며 걱정하고 있을 때, 자기가 먹을 보리 빵과 물고기를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에게 내어놓기도 했었지.”
“그는 예수님과 닮았나요? 덩치는 컸나요?”
“예수님을 닮지는 않았고 예수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그 제자는 몸이 아주 작고 왜소해서 태어나자마자 양치기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단다. 내버려 두면 곧 죽을 아이처럼 보였기 때문에 헤로데가 보낸 병사들에 의해 무고한 아이들이 죽임을 당할 때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성모님께서 이집트로 피신하실 때, 그도 함께 거두어 갔다고 하기도 하고. 아무튼 그 아이는 예수님과 함께 성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는데 이름은 두 개였단다. 하나는 성모님이 직접 지어 주신 이름으로 ‘작은 종’이라는 뜻의 ‘파이다리온’이었고, 또 하나는 훗날 제자들이 그를 무시하며 부른 이름으로 ‘작은 자’라는 뜻의 ‘미크로스’였단다.
“둘 다 작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미크로스라는 이름은 왠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속 뜻도 담겨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느껴지지? 사실 파이다리온은 키도 작고 몸도 왜소했지. 뿐만 아니라 정말 어린아이 같아서 하루는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공생활 한 지 3년이 되었는데, 한 치의 진전이 없으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시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파이다리온이 실로암 못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자 예수님께서 다가와 물었단다. ‘어찌하여 여기서 슬피 울고 있느냐?’ 파이다리온이 그 까닭을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파이다리온아, 네가 어린이처럼 단순함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아라.’ 그러자 파이다리온이 말하기를 ‘제가 어린이들처럼 지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그 많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는데도 그걸 기억을 못 했군요.” 꼬마 수사가 맞장구를 쳤다.
“허허허. 복음 말씀을 듣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느냐. 바보이면서 스스로가 바보인 줄을 모르는 사람이 진짜 바보지. 하지만 그가 다른 12제자들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어려운 말을 기억할 수 없을 터이니, 쉽고 간단한 것을 일러주겠다.’ 하시면서 빗자루 하나를 건네주셨단다.”
“빗자루요? 그건 왜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다른 사람보다 기억력이 떨어지니 일어나! 손을 뻗어! 이 빗자루를 가지고 청소를 하거라. 그러면서 '먼지를 털리라, 때를 없애리라.'라고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거라.’ 하셨단다. 그날부터 우둔하기는 해도 정직하고 성실했던 작은 자 파이다리온은 빗자루로 예루살렘 성전을 구석구석을 청소하면서 '먼지를 털리라, 때를 없애리라.' 하고 말하며 다녔단다.”
“그 사람한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네요. 성전을 정화하는 13번째 제자. 원장님 갑자기 제 방 청소도 게을리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네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먼지의 의미는 분명 우리 마음속의 먼지가 되겠지. 그리고 때라는 말씀도 우리의 영혼 속에 두껍게 낀 때가 아닐까? 사람이기 때문에. 또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마다 마음과 영혼에 먼지와 때가 끼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것을 털어내고 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힘을 내어라.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 주 하느님께서 몸소 함께 진군하신다. 주께서 몸소 너의 앞장을 서주시고 너의 곁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너를 포기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도 말라.”(신명 3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