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수사 마리오

독심술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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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부 축제 동안에는 그야말로 세상 만물이 창조주를 찬미 찬양하는 축제 기간이다. 모든 피조물이 주님의 부활을 축하한다.


엄마의 손길 같은 따사로운 초록빛 햇살은 부활 축제를 기뻐하는 온갖 봄꽃들의 얼굴을 비추어 주고 있었고, 꽃향기를 가득 품고 있는 봄바람은 겨우내 단단히 닫혔던 수도원의 창문들을 하나둘 열게 했다.


클라라 수사와 함께 길정 저수지 언덕으로 쑥을 캐러 가기로 한 오늘은 아침부터 꼬마 수사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준비물은 작은 망태와 쑥을 캘 칼이 전부다.


저수지로 가는 길은 봄 향기로 가득했다. 퇴비를 뿌린 밭에서 나는 거름의 시큼한 냄새가 시골길의 정겨움을 더하고 있다. 고양이 마리를 안고 가는 꼬마 수사는 연신 콧노래를 부른다.


저수지의 햇살은 더없이 따사로웠고 물살을 간지럽히는 바람은 꼬마 수사 일행을 반겼다. 야생화와 나비, 그리고 벌과 함께 풀밭을 뒹구는 고양이 마리와 꼬마 수사는 쑥 캐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쑥이 점심 국으로 끓여질 만큼 망태기에 담겼을 즈음 클라라 수사는 허리를 펴고 꼬마 수사와 마리를 찾았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놀고 있던 꼬마 수사는 야생화 사이를 오가며 맛있게 꿀을 먹고 있는 꿀벌을 보고 있었고, 고양이 마리는 그 새 노곤한 하품을 하고 있었다.


진정한 사랑은 친절이나 배려심보다 더 큰 무엇을 요구하기도 해.


그런데 꼬마 수사가 꿀벌을 바라보는 꼴이 예사롭지 않다. 클라라 수사가 꼬마 수사에게 다가가 놀라지 않게 속삭였다.


"마리오. 뭘 그렇게 뚫어지도록 보고 있어?"


그러자 꼬마 수사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쉬…. 수사님 독심술을 하고 있어요. 꿀벌의 마음 읽어보려고요."


"꿀벌의 마음을?" 클라라 수사가 의아해서 물었다.


"네. 요셉 수사님이 그러시는데. 형제의 마음을 읽고 헤아릴 줄 아는 것이 형제애를 실천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하셔서요. 그래서 꿀벌의 마음을 읽으려 하는데. 휴…. 잘 안되네요.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것이 이렇게 어렵나요?" 꼬마 수사의 표정이 울상이다.


클라라 수사는 꼬마 수사의 마음이 기특하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요셉 수사님이 참 좋은 말씀을 해주셨구나. 그런데 누군가의 생각이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단다."


"엄청 힘든 일인가요?" 꼬마 수사가 물었다.


"음.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꽃을 피우고 열매는 맺는 일처럼 때로는 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 또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바꿀 용기도 필요한 일이지."


"용기요?" 꼬마 수사가 몸을 일으켜 앉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으응.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을 보듯 형제를 보아야 하는데, 형제의 마음을 머리로 이해하려 하거나 알려고 하기보다는 마음을 다해 조심스럽게 다가가지 않으면 오해받기 쉽단다. 마음으로 다가간다는 말은 중요한데, 간혹 아픈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각오가 필요하다는 말이야."


"휴….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었군요." 꼬마 수사가 실망한 듯하다. 그러면서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인가요?"


"때로는 그래. 어떤 사랑을 하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진정한 사랑은 친절이나 배려심보다 더 큰 무엇을 요구하기도 해. 그래서 예수님은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고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하고 말씀하셨지."


꼬마 수사가 알쏭달쏭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클라라 수사의 말을 이었다. "꿀벌 형제의 마음을 알아채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군요. 수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형제애를 실천하기 위해 형제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같아요." 꼬마 수사가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이다.


"허허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것은 어느 순간 저절로 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꿀벌 형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서 벌침에 쏘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꿀벌의 친구가 되어준다면 꿀벌도 언젠가는 마리오를 사랑하게 되고 마리오의 마음을 알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 음 … 서로의 진심이 오가는 때가 되면, 서로의 언어가 달라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이해할 수 있게 되지.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그 마음을 알 수가 있단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군요. 사실 저는 지금 꿀벌한테 쏘이는 게 두렵거든요." 꼬마 수사가 뚱하게 말했다.


"마리오가 진심으로 꿀벌과 친구가 되고 싶고, 또 사랑하려 한다면 두렵고 힘든 일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는데, 그때에는 꿀벌한테 쏘여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거야."


"정말요?" 순간 꼬마 수사의 눈이 커졌다.


"그럼! 당연하지. 사랑은 언제나 기적을 일으키니까. 하지만 잊지 말아라. 마리오가 진심으로 꿀벌을 사랑할 때까지, 벌침은 언제든 마리오에게 두려움을 주고 또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네…. 알겠어요. 수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꿀벌을 진심으로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쏘여야 할지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가 볼게요. 제가 고양이 마리를 사랑하는 것처럼요."


"자. 그럼 이제 수도원으로 출발해볼까?" 클라라 수사가 망태를 어깨에 메며 일어섰다.


꼬마 수사도 마리를 안고 일어나서 앞장서 걸었다. 봄에는 어디서든 분홍색 꽃바람이 이는 것 같다. 희망과 기쁨이 가득한 향기로운 꽃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며, 수도원으로 향하는 두 수사와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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