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수사 마리오

버려진 것 같은 삶에게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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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증거 하는 삶을 살고 있는 수도원. 그곳에는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 형제들도 함께 살고 있다. 새벽 미사와 기도, 묵상이 끝난 수도원의 아침은 하루 중에서 제일 바쁜 시간이다.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인 형제들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식당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형제들. 경당과 전례 방을 청소하는 형제들. 체육실과 도서실, 공동 방을 청소하는 형제들. 공동 빨래를 하는 형제들. 꽃과 나무들에게 물을 주는 형제들. 텃밭을 가꾸는 형제들.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는 형제들.


꼬마 수사 마리오는 클라라 수사와 함께 아침마다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닭과 꽃들에게 먹이를 주며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꼬마 수사는 클라라 수사를 제일 좋아했는데, 클라라 수사도 꼬마 수사를 친동생처럼 사랑했다. 그에게는 별명이 있었는데, ‘텔레비전 수사’였다. 그는 세상의 모든 소식과 이야기들을 실재보다 훨씬 실감 나고 맛깔스럽게 전해주었다. 수도원의 모든 형제들이 다정하고 이야기를 잘하는 그를 무척 좋아했다.


맑게 갠 아침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떼를 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고, 닭장의 샛노란 병아리들은 암탉을 따라 모이를 쪼고 있다. 꼬마 수사는 꽃에 물을 주다가 불현듯이 클라라 수사에게 물었다.


"수사님, 수사님은 정말로 꽃과 나무와 동물들하고도 이야기하실 수 있으세요?"


꼬마 수사와 함께 ‘칼랑코에’ 꽃과 ‘군자란’에 물을 주던 클라라 수사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따라서 하라는 듯이 ‘크로커스’ 꽃에 귀를 갖다 대었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클라라 수사가 꼬마 수사를 보며 말했다.


"음…?." 페튜니아 꽃에 귀를 기울이던 꼬마 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잘 들어봐. 수사님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하고 말하고 있어." 클라라 수사가 말했다.

"정말요?" 꼬마 수사는 페튜니아 꽃에 더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둘러댔다. "아! 얘들은 아직 자고 있나 봐요. 조용해요. 수사님."


페튜니아 꽃에게 말을 했다. "이렇게 예쁘게 피어나서 고마워…."


클라라 수사가 다시 너털웃음을 웃으며 꼬마 수사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페튜니아 꽃에게 말을 했다. "이렇게 예쁘게 피어나서 고마워…. 수사님도 사랑한단다…."


"수사님께는 아침 인사말을 했나요? 저한테는 한마디도 안 하는데…." 꼬마 수사는 금방 울상이 되었다.


클라라 수사가 꼬마 수사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괜찮아. 마리오. 수사님도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어. 그런데 식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어떤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에, 수사님도 그 사람처럼 마음의 눈과 영혼의 귀로 들으려 오랜 시간 노력을 했지.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가 꽃들이 아프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됐어."


"꽃들이 아프다고 말을 했어요?" 꼬마 수사가 의아해서 물었다.


"으응. 꽃들도 나무들도 강아지와 닭, 그리고 마리오가 제일 좋아하는 고양이도 역시 아플 때는 아프다고 말을 하고 슬플 때는 슬퍼하지. 또 기쁠 때는 신나서 춤을 추기도 하고 말이야."


"와…! 진짜요?"

"그럼. 마리오도 강아지 하심이랑 복돌이, 그리고 고양이 마리랑 삼순이 치즈랑 이야기할 때가 있지?"

"네! 하심이랑 복돌이, 마리랑 삼순이, 그리고 치즈랑은 저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식물도 마찬가지야.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단다." 클라라 수사는 꼬마 수사의 손을 잡고 팬지 꽃에 물을 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미국의 원예 개량가 중에 루터 버뱅크라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하루는 길을 걷다가 길가에 버려진 덩굴장미 한 송이를 주웠지. 그 장미는 이미 생명이 다해가고 있었어. 그런데 버뱅크 아저씨가 말라비틀어진 줄기를 조심스럽게 자기 정원에 옮겨 심으면서 말했지. '가여운 것…. 얼마나 아프니?' 이렇게.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는데. 덩굴장미가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거야."


"우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 장미는?" 꼬마 수사가 다그치듯 물었다.


클라라 수사는 버뱅크가 장미를 보았듯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꼬마 수사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렇게 상처 받고 버려진 장미였지만, 버뱅크 아저씨의 정성 어린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어느 날 버뱅크 아저씨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단다."


"우와…. 정말 기쁜 일이네요." 꼬마 수사는 박수까지 처가며 기뻐했다.


"식물의 아버지로 불리는 버뱅크 아저씨는 '식물을 독특하게 길러내고자 할 때면 나는 무릎을 꿇고 그 식물에게 말을 건넨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단다. 또 가시 없는 선인장을 개량할 때에는 '너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어. 그러니 방어를 위한 가시도 필요 없는 거야. 내가 너를 지켜주면 되잖니?'라고 매일같이 이야기해주었데."


"그리곤 선인장이 정말로 가시가 없어졌나요?"


"으응. 정말로. 그리고 이런 말도 남겼어. '나는 이 기적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그리하여 점차 과학적인 지식과는 별도로 식물 생장의 비밀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 기적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그리하여 점차 과학적인 지식과는 별도로 식물 생장의 비밀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꼬마 수사 마리오는 클라라 수사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설렘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수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한 건데요. 버뱅크 아저씨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분이셨을 것 같아요. 식물들하고 이야기하실 정도면…. 저도 오늘부터 더 큰 마음으로 더 큰 사랑을 나누고 싶어 지네요. 저도 버뱅크 아저씨처럼 될 수 있겠죠?"


클라라 수사는 꼬마 수사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럼! 하느님은 사랑이시니까. 사랑하려는 자녀들에게는 더 큰 은총으로 도와주시지."


그날 아침 꼬마 수사 마리오는 수도원 정원에 핀 꽃들의 재잘거림을 곧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으로 한껏 들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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