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입니다. 해마다 봄이 찾아오는 이유는 형제를 '있는 그대로' 다시 보라(see)'고 '봄(spring)'은 다시 왔습니다. 저울질하는 사순입니다.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의심하는 삐뚤어진 눈'과 '곡해하는 당나귀 귀'와 '험담을 일삼는 험한 입'을 저울질하는 은혜로운 때이지요.
하느님의 너그러운 시선으로, 그분의 자비로운 손길로, 그리고 무한한 그분의 사랑으로 형제와 세상과 자신을 '다시 살리는' 은총을 청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다니 9,4.8.)
# 용서하면 용서받을 수 있고
텍사스 주의 재판소에서 한 살인범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은 그 주의 공직에 있는 동안 많은 공로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형은 주지사를 찾아가서 자기 동생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며 사면을 간청했습니다.
주 법정은 형의 공로와 그의 보증을 참작하여 그의 동생의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 어렵게 주지사의 사면장을 받아 넣은 형은 기쁜 마음으로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동생에게는 조금도 회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형이 물었습니다.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여기서 살아 나간다면 무엇을 하겠니?”
그랬더니 동생은 얼굴을 찡그리며 주저 없이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나간다면 첫째로, 내게 사형 선고를 내린 판사를 찾아 죽일 것이고,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을 섰던 놈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죽여버릴 거야.”
형은 두말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형무소 문을 나서는 형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주지사로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용서와 사랑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면, 천사도 가지고 왔던 주님의 축복을 당신께 전달하지 않고 그냥 돌아설지도 모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카 6,36-37)
# 하느님의 자비[חָסִיד(케세드); ἔλεος(엘레오스)
엄밀히 말해서 ‘자비’라는 말은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피조물로 흘러넘치고 시작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성경에서 ‘자비’라는 말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시는 하느님 의지인데요. 하느님의 사랑은 자연 발생적인 감정의 차원을 뛰어넘어 초월적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곧 ‘초월적 사랑’은 인간의 그 어떤 사랑보다도 드높은 사랑입니다.(창세 32,11; 2역대 32,32; 이사 49,15) -차동엽, 홍승모, [말씀의 네트워크] 참조-
# 자비하신 아버지처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예수님께서는 오늘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시며 구체적인 네 가지 지침을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심판하지 마라”, “단죄하지 마라” 그리고 “용서하여라”, “주어라”
앞선 두 가지는 '하지 마라'는 부정의 지침이자 소극적인 지침입니다. 반면에 이어지는 다른 두 가지 '하여라'는 긍정의 지침이자 적극적인 지침입니다.
또 오늘 말씀은 상승적인 단계별 행동지침이기도 합니다.
즉 자비하신 아버지처럼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심판하고 단죄하는 것을 '하지 마라' 하십니다. 이 일을 그친 후에 용서하고 베풀어라 하시지요.
속 마음은 형제를 심판하고 판단하면서도 용서하고 베푸는 일은 자칫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달리는 자동차가 유턴하기 위해서 브레이크를 밟아 우선 멈춤을 한 후 다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듯, 회개의 과정도 우선 멈춤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형제와 세상과 나를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형제의 허물을 판단하기보다 내 안의 들보같은 죄악을 바라보면 자기 맘대로 세상과 형제를 심판하거나 단죄할 수는 없지요.
정화의 과정이 끝나면 유턴하십시오. ‘먼저 용서하는 것'과 '먼저 베푸는 행위'는 하느님께로 날아가는 두 날개라고 합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0,21)
사순시기에 내가 맺은 자비의 열매는 곧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사도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모욕이 있는 곳에 인내를 불화가 있는 곳에 화목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자기를 주면 받을 수 있고, 자기를 잊으면 찾을 수 있고, 용서하면 용서받을 수 있고, 목숨을 잃으면 영생으로 부활하겠사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