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도 산의 의미는 시험이 시작된(마태 4,8-9) 곳이자 말씀을 선포하신 곳이며(마태 5,1) 기도 중에 예언자들과 아버지를 만나시는 곳이었고(마태 14,23; 17,1-8; 루카 6,12), 거룩하게 변화하신 곳도 이곳이었으며(마르 9,2-10), 예언하시고(마태 24,3)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루카 23,33)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만나신 곳도(마태 28,16) 또 승천하신 곳도(루카 24,50) 산이었습니다.
# 새 계명을 위하여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루카 9,35)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했던 모세와 엘리야가(탈출 34,1-28; 1열왕 19,1-18) 타보르산 위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예언을 완성하는 새 계약을 맺으실 것입니다. 사랑의 계약이지요. 새로운 약속입니다.
율법과 예언의 완성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을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새로운 계명’을 위한 만남이지요.
그때,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신명 18,15; 마르 9,7; 루카 9,35) 하십니다.
아버지의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신분을 알 수 있고, 세상에 선물로 주실 새로운 약속에 대한 강한 의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케리그마(κῆρυγμα, 선포하다, 알리다, 외치다)’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단서가 함언含言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의로움을 위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율법(도덕; 탈출 20,1-26; 재판: 탈출 21,1-14; 의식: 탈출 24장-31장)을 주셨지만, 이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계약을 맺으려 하십니다.
이 새로운 약속은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할 약속이며 동시에 구원을 위해 예언된 단 하나의 법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사랑으로 완성되는 계명이지요.
# 아들을 내어놓은 사랑
자기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아들을 내어놓은 사랑이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로마 8, 31-33)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가운데에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셨으니, 그것은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이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 죄 때문에 속죄의 제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완전해집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이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심을 우리는 압니다. 그분이 당신 영의 한몫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1요한 4, 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