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새로운 약속을 위하여

by 진동길


# 교황님의 교통위반

유럽을 방문 중인 교황님이 시내를 관광하다가 갑자기 운전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기사에게 말했다.

“ 이보게, 내가 운전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러니 한 번만 운전 좀 하게 해 주겠나?”

교황님의 부탁에 기사는 운전대를 교황님께 맡기고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운전을 처음 해 본 교황님은 빠른 속도가 너무나 좋아서 그만 규정 속도를 위반해서 경찰에게 잡히게 되었다.

그런데 창문을 열고 교황의 얼굴을 본 경찰관이 무진장 난감한 얼굴로 본부에 연락을 했다.

“저... 속도위반을 했는데, 엄청 중요한 인사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러자 서장이 물었다.

“누구야? 혹시 주지사야?”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인사입니다.”

서장은 또다시 물었다.

“뭐야? 그럼 혹시 대통령?”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훨씬 더 중요한 인물 같습니다.”

“그럼 도대체 누구야?”(약간 화가 나서)

“확실히는 모르겠는데요.... 교황님을 운전기사로 부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

공부하려고 파견된 한 수사님이 학위 받을 날을 며칠 앞두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수사님이 원장 수사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이토록 빨리 저를 부르실까요? 학위논문이 곧 마무리될 텐데, 그때까지 기다려 주시지 않고 ….”

형제 수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원장 수사님도 가슴이 먹먹해 왔지만, 이렇게 대답해주었습니다.

“주님은 수사님의 일보다 수사님을 더 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수사님은 곧 행복하고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은 여기가 끝이 아니지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이승의 삶을 마지막으로 여기며 사는 이들은 불행한 이들이지요.

이승에서의 삶을 마치는 순간 생명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보다 얼마나 더 많이 사랑했는가를 물어보실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았는지를 보실 것입니다.

많은 일에 신경을 쓰다 보면 그 일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지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본래 의미와 목적은 사랑이었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서로 충분히 사랑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기 위해 우리의 일들은 시작되었고 목적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룩한 일보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 산의 의미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루카 9,28)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40일 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높은 산에 오르십니다. 성경에서 높은 산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시는 장소였고 당신의 속성을 드러내시는 곳이었으며, 당신의 역사를 시작하신 곳이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언자들에게는 피난처이자 안식처였고 예배의 장소였습니다(창세 8,4; 22,1-14; 탈출 3,1-2,12; 판관 6,1-7,20; 1열왕 18,20)

예수님께도 산의 의미는 시험이 시작된(마태 4,8-9) 곳이자 말씀을 선포하신 곳이며(마태 5,1) 기도 중에 예언자들과 아버지를 만나시는 곳이었고(마태 14,23; 17,1-8; 루카 6,12), 거룩하게 변화하신 곳도 이곳이었으며(마르 9,2-10), 예언하시고(마태 24,3)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루카 23,33)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만나신 곳도(마태 28,16) 또 승천하신 곳도(루카 24,50) 산이었습니다.




# 새 계명을 위하여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루카 9,35)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했던 모세와 엘리야가(탈출 34,1-28; 1열왕 19,1-18) 타보르산 위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예언을 완성하는 새 계약을 맺으실 것입니다. 사랑의 계약이지요. 새로운 약속입니다.

율법과 예언의 완성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을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새로운 계명’을 위한 만남이지요.

그때,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신명 18,15; 마르 9,7; 루카 9,35) 하십니다.

아버지의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신분을 알 수 있고, 세상에 선물로 주실 새로운 약속에 대한 강한 의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케리그마(κῆρυγμα, 선포하다, 알리다, 외치다)’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단서가 함언含言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의로움을 위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율법(도덕; 탈출 20,1-26; 재판: 탈출 21,1-14; 의식: 탈출 24장-31장)을 주셨지만, 이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계약을 맺으려 하십니다.

이 새로운 약속은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할 약속이며 동시에 구원을 위해 예언된 단 하나의 법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사랑으로 완성되는 계명이지요.




# 아들을 내어놓은 사랑

자기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아들을 내어놓은 사랑이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로마 8, 31-33)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가운데에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셨으니, 그것은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이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 죄 때문에 속죄의 제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완전해집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이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심을 우리는 압니다. 그분이 당신 영의 한몫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1요한 4,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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