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다소 잔인한 실험 하나가 진행됐다. 연구 책임자였던 존 리히터 교수는 기다란 플라스크에 실험용 쥐 한 마리를 넣고 그 안에 천천히 물을 붓기 시작했다. 플라스크 벽이 높고 미끄러웠기 때문에 쥐가 벽을 타고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이 점점 차올라서 헤엄을 쳐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쥐가 얼마나 오랫동안 견뎌내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었다. 놀랍게도 어떤 쥐는 60시간을 버텼지만, 어떤 쥐는 15분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왜 어떤 쥐는 금방 포기했지만, 어떤 쥐는 무려 60시간씩이나 사투를 벌였던 것일까? 타고난 체력 말고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혹시 삶의 의지 같은 것이 작동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연구팀은 다른 쥐들을 대상으로 변형된 실험을 하였다. 쥐들이 헤엄을 치며 안간힘을 쓰는 그 마지막 절망의 순간에 쥐를 건져 주는 절차를 몇 번 반복하였던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절차였다. 그렇게 해서 희망을 갖게 된 쥐들에게 원래 실험을 반복하였더니 놀랍게도 이번에는 모든 쥐가 평균 60시간을 버티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쥐도 15분 만에 포기하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약골이었던 쥐도 여느 강골 쥐 못지않은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희망의 저력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는 않겠다. 이 역경을 이겨내고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말아야 한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말은 단순한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가 아니다. 값싼 동정도 아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시간 날 때마다 던져야 하는 소중한 메시지이다. 어떤 고통과 어떤 수치와 어떤 굴욕 속에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삶의 계명이다.
리히터 교수의 실험에서 배워야 할 또 다른 교훈은 희망은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온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건져 주었기 때문에 쥐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희망은 누군가의 도움과 격려로부터 생겨난다. 오늘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언젠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그 누군가 때문이다. 우리의 부모, 형제, 친구, 선생님이 바로 우리 희망의 끈에 날실과 씨실이 되어준 것이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을 단순히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의 끈은 단단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희망의 무한 책임이 있다. 내가 견뎌내는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희망의 끈을 제공해주는 위대한 행위이다. ㅡ최인철 교수의 칼럼에서ㅡ
# 그대가 곁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혼자 길을 걷다가 문득, 길을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 도반이 생겼다. 행복한 마음에 그 마음을 그에게 전해주었다.
"그대가 곁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러자 그보다 내가 더 행복해졌다.
# 믿음이 표징을 낳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이사 65,17-18.)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4,49-50.)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거나 생각할 수 없는 신기한 일. 우리의 이성으로 상상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체험했을 때 우리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지요.
오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경을 헤매던 아이. 죽어가던 왕실 관리의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그것도 카나에서 33Km나 떨어진 카파르나움에 앓아누워 있는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표징은 그분이 누구이신지 그 신원을 말해주는데요. 첫 번째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주시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방인이자 왕실 관리의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는 표징을 일으키셨습니다.
누구에게나 도움의 손길과 메시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좋은 일들을 연이어 낳는 효과입니다.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는 표징의 효과는 더 탁월하지요.
믿음과 신뢰를 갖게 하는가 하면 희망과 행복을 선물합니다. 특히 구원의 은총을 바로 눈 앞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 구원으로 이끄는 희망과 믿음
영성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희망과 믿음은 새의 양 날개입니다. 새가 날기 위해서 한 날개만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희망과 믿음도 함께 펼치고 힘껏 날갯짓을 해야 하지요.
“영은 생명을 준다. 내가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3.)
새의 날갯짓이 그렇듯 인생은 결코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생은 누군가와 함께 가는 길이며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하느님을 찾는 인간으로 하느님과 함께 동행할 때, 인생은 풍요로워지고 더 행복해지며 마침내 지상에서도 하늘나라의 인간으로서 사는 것이지요. 영적 인간입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말은 단순한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가 아니다. 값싼 동정도 아니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을 단순히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의 끈은 단단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희망의 무한 책임이 있다. 내가 견뎌내는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희망의 끈을 제공해주는 위대한 행위이다." ㅡ최인철
영적인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고 갈등도 없는 삶이 아니지요. 두려움과 고통과 죽음이 없는 삶도 아닙니다.
지금-여기.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입니다. 현실이자 일상에서, 이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려 양 날개를 펼치고 날갯짓을 하는 삶이 영적인 삶이자 영적인 인간입니다.
믿음과 희망의 주인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이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분께 나아가기를. 공간적 거리와 시간적 사이는 인간이 느끼는 차이일 뿐 그분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