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부활

by 진동길


# 인간이 만나는 네 가지 차원

하느님의 영혼을 가진 인간은 성장하면서 여러 차원, 다차원의 세계를 체험하게 되는데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느끼고, 경험하고, 인식하게 되는 차원을 일차원적이라고 한다면 '점'으로 이야기되는 차원이겠지요. 가장 감각적이고 육적인 세계이자 물리적인 차원입니다.

점의 세상에서 인간은 차츰 성장하게 되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리는 두 번째 차원을 만나게 되고 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정신적인 차원, 정신적인 세계입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은 언어를 습득해야만 하는 데요. 언어를 알게 되면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알아가면서 자신의 정신세계 혹은 인식의 세계, 지적이고 논리적인 세계가 점점 더 팽창하고 커져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점점 더 많이 추리하게 되고 추측하면서 자기만의 범주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는 더 큰 세상과 더 가치 있고 본질적인 세상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되고.

마침내는 이데아의 세계, 형이상학적 세계, 신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어떤 이들은 종교에 귀의하기도 합니다.

형이상학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이 모든 차원들을 아우르고 통합하는 진실한 세계. 진리의 세계. 변하지 않으면서도 변하고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고. 성과 속이 하나가 되는 세계를 인정하게 되는데, 그 세계가 영적인 세계입니.


# 메시아의 부활: 하느님 자기 계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만나면서 우리가 흔히 범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오류 중에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과 인간의 부활을 같은 차원에서 생각하는데서 발생하지요.

메시아.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 자신의 부활과 인간이 앞으로 겪게 될 부활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하고 싶어 하는데서 부활의 의미가 이해받지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신적이거나 기적적인 사건으로 곡해되기도 합니다.

몸의 부활. 육신의 부활은 부활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만난 사도들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어난 유일무이한 사건에 대한 역사적 신앙고백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도들이 고백하는 예수님의 신적 부활을 믿는 것에 그쳐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는 제자들의 증언으로 충분하기에 그렇습니다.

다시 한번 더 명확히 하자면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신 사건이자 아드님의 증언이 진리였음을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스승의 가르침과 믿음을 돈독히 하고 인류에게는 아드님이 하느님 당신과 하나이심을 드러내 보이신 사건입니다.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 그 이상의 해석은 불필요하지요.

# 예수 부활의 의미

주님의 부활로 제자들은 생전에 스승이 그들에게 심어준 신앙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됩니다.

제자들은 이제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요한 20,17.)의 실존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부활로 제자들은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그분.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서 기록되고 예언되었던 그분의 현존을 다시 새롭게 체험하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분"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루카 24,46.)

주님의 부활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 이스라엘의 신앙 문서들을 새롭게 읽고,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 1.3-4)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하느님의 성사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 보여주신 ‘케리그마(Kerygma, κῆρυγμα, kêrugma)’는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다”였습니다.

‘성서가 예언자를 통해 이미 약속한 복음’(로마 1,2.)의 완성과 선포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루카 24,46)였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하느님께서 직접 마침표를 찍으신 하느님의 성사이자 자기 계시의 완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은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구원의 케리그마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성사인 부활은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동시에 당신 아들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적 종말론적 운명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로마 8,2.6.9.13.)

주님의 부활로 교회는 이제 살아계신 하느님께로부터 매일매일 성령의 성사, 완전한 성사, 생명의 성사를 선물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인간의 부활

그러므로 우리의 부활을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부활과 소생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또 죽음 이후에 맞이하게 될 (욕망에서 비롯된) 억측과 과장은 우리의 참된 신앙을 뿌리에서부터 흔들 뿐입니다. 올바르고 생생한 신앙을 오히려 부패하게 할 뿐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은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1코린 15,42-44.)

그러므로 인간에게 부활이란 예컨대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씨앗이 나무가 되듯이 현세적인 몸은 사라지고 새로운 차원의 몸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마리아 막달레나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예수님을 곧바로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르 12,25.)

예수님의 말씀에서 얻게 되는 확신은 우리가(인간이 죽은 후에) 부활하여 영광스러운 몸을 지니게 되면 지상에서 얽매이던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우리는 추측하거나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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