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새벽.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마리오 신부는 울산 공동체에서 부활 전야 미사를 마치고 대구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는 짙은 안개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그가 운전하고 있는 i30 조수석에는 그의 오랜 반려묘 '마리'가 하품을 하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마리오 신부는 창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졸음을 쫓기 위해서. 그때 그의 차 뒤에서 덤프트럭이 경적을 서너 번 울렸고 거의 같은 순간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일으키는 마찰음 소리가 날카롭게 그의 귓등을 찢고는 공중으로 흩어졌다. '사고가 났나 봐.'
'너무 졸려... 가까운 휴게소에 들렀다가 가야겠다. 언양 휴게소에서 쉬었다가 가자.'
"동춘아! 동춘아? 아버지?"
휴게소에 차를 주차하던 마리오 신부는 동생과 아버지가 지나가 가는 것을 보았다. 마리오 신부는 무심코 내뱉은 자신의 말에 더욱 깜짝 놀라며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동생과 아버지는 죽은 지 10년이 넘었다.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깡마른 사내는 마리오 신부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듯.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아버지를 부축하며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마리오 신부는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숨은 턱에 걸려 있었고 몸이 차갑게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의 심장은 혹시나 하는 의심과 바람, 사이에서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휴게소 안으로 들어갈 때 뒷모습은 분명 그의 동생과 아버지였다. 동생은 어릴 때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조금 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언제나 즐겨 입으시던 낡고 빛바랜 빨간색 여름 낚시 조끼를 여전히 입고 계셨다. 그의 동생과 아버지가 분명했다.
마리오 신부는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설레면서도 두렵고 공포스러운 감정이 뒤섞인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조수석에서 졸고 있던 고양이 마리가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입 안이 바짝 타들어갔다. 진정할 수 없는 맥박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동생과 아버지가 죽은 지 올해로 13년 흘렀지만, 마리오 신부는 아직도 그들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잊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니 잊으려 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마리오 신부의 눈동자는 여전히 휴게소 안을 유심히 살피며 동생과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심장은 여전히 숨 가쁘게 쿵쿵거렸다.
'그들이 죽은 게 아닐지도 몰라.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모두가 나를 속일 수도 있지. 사실 나는 그들의 죽은 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잖아. 동춘이와 아버지가 냉동실에 들어간 날에도. 또 1000도가 넘는 화장로에 들어가는 날에도 나는 그들의 시신을 본 적이 없어. 어쩌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생각해 볼수록 내 확신이 틀림없는 것 같아. 나는 결코 미치지 않았어.'
마리오 신부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 유산이나 보험금을 노린 가짜 죽음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동생과 어울리던 친구들 가운데에는 거짓으로 위장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 서로 나누어가진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리숙한 동생과 아버지를 사람들이 이용했을 수도 있다. 병원 의사들도 금품을 대가로 거짓 진단서를 작성해 주었다는 뉴스도 있지 않던가. '아니야. 아니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은 하지도 말자.' 마리오 신부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마치 갑작스러운 풍랑을 만난 배처럼.
그때, 휴게소의 문이 열렸고 죽은 동생이, 아니 죽은 동생과 아버지를 닮은 그들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곧장 좀 전에 타고 왔던 제네시스 차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리오 신부는 운전석 창문을 열고 숨을 죽여가며 동생과 아버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니 동생과 아버지를 닮은 사내들을. 온 신경을 곧추 세워 응시했다. 그들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서 확신하고 싶었다. 부정적인 믿음을 버리고 싶었다.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그래. 역시 아니야.' 마리오 신부의 의심은 다행히 허무하게 빗나갔다. 그들은 동생과 아버지를 많이 닮았지만, 확실히 그들이 아니었다. 제네시스 차가 떠나고 마리오 신부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쉬움과 슬픔도 한꺼번에 밀려왔다. 동생과 아버지가 숨을 멎는 그 순간. 그들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 분노도 함께 치밀어 올라왔다. 안개 낀 휴게소는 더없이 쓸쓸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