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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Apr 28. 2021

소금단지

교회(우리, 나)는 누구인가?


# 부모는 아이의 거울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

“술에 취해 거리에서 크게 소리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행위를 일컫는 ‘가’로 끝나는 사자성어는?”

답: (고)(성)(방)가

아이들의 재미있는 오답들.

“고음불가!”
“이럴수가!”
“미친건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 압권인 오답
“아빠인가?”

누구나 자기가 지닌 경험과 지식의 틀에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는가 봅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생각이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 생각이 있으니 말입니다.

흔히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그들을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부모의 말씨를 들으면서 말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부모인가요?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시고 고백하십니까? 교부들은 자기 자신과 교회를 어떻게 직시했고 성찰했으며 어떻게 고백했을까요?

# 교회(우리, 나)는 누구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창녀(교회, 우리, 나)와 사랑에 빠지셨습니다!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그 창녀가 높이 올라갈 수 없었기에, 그분께서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창녀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그 여인이 술에 취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어떻게 들어가셨습니까? 벌거벗은 그 여인의 신적인 상태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창녀의 상태에 들어가셨습니다.

'… 나 이제 그대를 내 안에 품어, 그 누구도 감히 그대를 넘보지 못하게 할 것이오! 목자가 그대를 품에 안고 간다면, 늑대가 다가오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그 여인이 말합니다. '하오나, 저는 죄인이며 더러운 년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의사입니다.'

그분의 미친 사랑은 죄를 기워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허물과 부족함을 용서해 주십니다. 마귀의 딸이며 지상의 부당하기 짝이 없는 딸이 임금의 딸이 되었습니다. 미치도록 사랑하시는 그 연인께서 원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미치도록 사랑하시는 그 연인께서는 형식에 사로잡히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추한 것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미친 짓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종종 추한 것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이처럼 하셨습니다. 추한 여인을 보시고, 미치도록 사랑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십니다. 창녀를 아내로 삼으시고, 당신 딸처럼 사랑하시고, 여종처럼 돌보시고, 동정녀처럼 지켜주시고, 정원처럼 담을 둘러주시고, 당신 지체처럼 아끼시며, 당신 머리처럼 돌보시고, 뿌리처럼 심어주십니다.

목자처럼 그 여인을 보살피시고, 신랑처럼 그 창녀를 아내로 맞으시며, 제단처럼 그 여인에게 은총을 베푸시며, 신랑처럼 그 여인을 아름답게 지켜주시며, 신랑처럼 그 여인의 안녕을 염려합니다. 오, 추한 신부를 아름답게 만드시는 신랑이시여!"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에우트로피우스 강해’에서 2장 11절-

# 교회가 거룩한 이유

예수님은 함정이며 걸림돌(skandalon, σκάνδαλον)인 동시에 반석(petros, Πέτρος)인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2000년이 흐르는 역사 속에서 교회는 수많은 오류와 죄악을 저질러 왔지요. 지난 온 시간들과 사건들 앞에 섰을 때, 과연 교회는 스스로를 거룩하다 할 수 있는가?

일찍이 교부들은 교회를 ‘순결한 창녀’라고 고백할 줄 알았습니다. 온갖 허물과 죄로 물들었지만, 그런 교회가 거룩하다고 선언할 수 있는 이유는 거룩하게 하시는 그분과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교부들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부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스스로를 바라봤고 고백했습니다.

1. 교회는 스스로 죄인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었고, 또 수많은 죄인들과 하나이기에 추하고 죄스럽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거룩하다 할 수 있음은 죄인을 외면하거나 저버리지 않으시고, 있는 그대로 변함없이 품어주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교회와 함께 그 안에 살고 계신다.

3. 죄인인 교회는 하느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자비로 말미암아 언제나 정화되고 새로워진다. 교회를 영원히 새롭게 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용서이다.

교부들은 그분의 존재론적인 사랑이 죄인들과 하나 되기를 원하셨기에 교회의 표상을 '순결한 창녀'에 비유했지요.

창조와 함께 흘러넘치는 사랑,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거룩하고 완전한 분이 부족하고 죄 많은 존재를 당신과 같은 신적 차원으로 들어 올려주시려 내려오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신 분이 스스로를 낮추셨으며, 보잘것없는 인간을 높이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으신 것이지요.

# 성자의 기도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7-19.)

스승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의 기도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아버지와 아들과 관계를 믿게 된 제자들,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거룩해지기를,  또 순결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2000년 전에도, 지금도.

메시아의 기도는 교회가 거룩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교회는 ‘순결한 창녀’입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교회. 진홍같이 붉은 죄로 물든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거룩하고 순결할 수 있는 이유는 거룩하신 아버지와 아들과 진리의 성령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요한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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