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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May 06. 2021

2021

5월 3일ㅡ존형이라 불리던 사내

사목자들의 공식적인 휴일인 월요일. 아침부터 나는 그를 찾아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가 사는 움막집은 마을에서 한 시간 거리지만 가파른 고개를 두 번 넘고 산 허리를 휘돌아 가야 했다.

숲 속 깊은 곳에 들어앉은 그의 집은 등산객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비닐하우스 위에 온갖 나무 잔가지들을 얼기설기 꽂아놓은 새둥지 같았다. 그야말로 추위와 더위만 피할 수 있는 움막이 그가 사는 집이다.

그는 언제나 해맑은 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앞 니 두 개가 없는 그가  웃는 얼굴은 희극배우 떠오르게 했고 온화한 그의 표정은 보고 있으면 세상 걱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한 때 나는, 그가 나를 반기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를 내 양손에 들린 막걸리와 담배, 그리고 흔히 말하는 삼박자 커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움막을 수요일 오전 미사가 끝난 후, 그리고 주일 오전 9시 미사 후에 찾아가곤 했는데, 주일에는 미사에 참석한 그와 함께 그의 움막으로 가거나 아니면 함께 바닷가를 걷기도 했다.

오늘은 새벽 미사를 마치자마자 그를 찾았다. 어제 그를 위해 구입한 라디오를 전해줄 작정이다. 자기는 이미 죽은 목숨이고 덤으로 사는 삶이기에 다 필요 없다고 했지만, 세상 소식은 궁금해할 것 같아서 준비를 했다.

가식 없는 그의 미소에 불현듯 '아직도 그를 '네버앤딩스토리'라고 불러야 하는가?'라고 자문하며 헛웃으로 그가 좋아하는 막걸리부터 내려놓았다.


그가 네버애딩스토리라고 불리게 된 때는 예비 신학생 모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하는데. 그가 한 번 입을 열기 시작하면 전원이 켜진 라디오처럼 끝없는 이야기를 쏟아냈기 때문에 붙여진 그의 별명이다. 동기 신학생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있음을 그도 알고 있었지만, 그 앞에서 별명을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의 세례명인 요한의 영어 발음 '존'에 '형'이라는 의존명사를 붙여 '존형'이라 불렀다. 신학생들이 그를 존형이라는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의 호칭에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동기 신학생들 중에서 가장 맏이로서 리더의 권위와 역할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좋은 형'이라는 뜻으로 그의 성품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존형. 곱상하면서도 다정한 첫인상의 그를 만난 지도 스물 두 해가 지났다. 그를 처음 만난 날부터 덩치 큰 사람들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던 나는 최대한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그는 용기 없는 내가 선망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일은 전부 다 했고, 또 게으른 내가 피하고 싶고 하기 싫어하는 일들은 도맡아 했으며, 율법주의자와 다르지 않은 내가 경멸하는 일들을 즐겼다. 그래서일까. 그의 곁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사람 좋아하는 그에게는 언제나 사람들이 꼬여들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그리고 자기 곁에 있고 자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척척해냈다. 그것이 규칙과 규범을 넘어서는 일일지라도. 그에게는 사람이 최우선이었고 가장 소중한 대상이었다.

아주 사소한 사건을 예로 들면 신학교는 개강을 앞두거나 입학식이 있기 일 주 전부터 피정을 한다. 피정 기간 중에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더라도 침묵해야 한다. 예비 신학생들은 특히 더 그렇다. 규정이다. 


눈치챗겠지만, 그에게 침묵피정이라는 암묵적이고 관습적인 규정도 사람보다 우선 순위 앞에 놓일 수 없었다. 그의 법은 그와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그를 만나러 온 벗이 우선이었다.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겠지만, 그 책임도 그가 전부 짊어졌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마친 호기심 많은 미성인들에게 학칙은 깨어지라고 정해진 것처럼 여겨졌으므로 예비 신학생은 교수 신부님들과 선배 신학생들의 눈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 속닥이곤 했다.

그들은 여전히 일반 고등학생들과 다르지 않았으며, 신학교가 어떤 곳인지 아직 몸으로 깨닫지 못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곧 예상했던 일이 발생했다.

요한은 피정 첫날부터 그의 특별한 재능으로 눈에 띄는 예비 신학생이었다. 입담이 좋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의 곁에는 늘 소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의 곁에는 똥 파리가 꼬이듯 언제나 동기생들이 있었다. 아니 그들이 꼬여들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 미술을 전공하고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으려고 했지만,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다고 자기소개를 한 그의 나이는 서른.

나하고 같은 나이다. 하지만 어렵게 어렵게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니다가 수도원에 들어와 신학 공부를 하려 했던 나와 그의 지적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였고 깊이도 달랐다.

고등학교 갓 졸업 신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신학교에서 그는 금방 리더가 되었다. 나이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았으며, 체격도 월등했으므로 수도원 신학생들뿐만 아니라 교구 신학생들도 그를 곧 그를 친형처럼 따랐다.

좀 과장하면 동기 생들은 그가 손가락만 까닥해도 마법에 걸린 듯 그의 발 앞에 가 있었고 그러한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으며, 때로는 교수 신부님들도 그의 입담에 휘둘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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