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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May 21. 2021

2021

5월 21일


상담가들 중에는 내담자의 "꿈"과 만나는 이들도 있는데, 내가 만난 상담자도 나의 겉모습이나 나의 사회적 위치나 나와 연결된 대인 관계보다 "내 꿈"을 더 신뢰하는 것 같았다.

"지난밤 꿈에 나타난 창백한 여인은 가슴이 드러나는 얇은 흰색 반팔 옷을 입고 짙은 남색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어요. 그녀는 마을 공동 우물에서 몸을 씻으려 하는 것 같았어요.

얇은 흰색 셔츠 속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그녀의 가슴은 검고 파랗게 멍들어 있었나는 그 순간 그녀의 삶이 성경 속 사마리아 여인 같았다고 생각했지요.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진 우물 가장자리에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초등학교 9살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밝은 햇살을 만끽하며 놀고 있었어요.

하지만 나의 시선은 여전히 가슴이 멍든 여인에게 멈춰있었습니다... 그녀나를 볼 수 없지만 나그녀를 바라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서...."

나는 (마치 다른 현실처럼 살았던) 꿈속의 이야기. 그 또 다른 나의 삶을 상담사 앞에서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녀는 융의 심리학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녀가 소개한 융의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불완전하고 상처 받은 나의 내면은 내 안의 여성성이 전해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그 메시지는 꿈을 통해 전달된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보면, 여성이 자기 안의 아니무스(여성 속에 내재하는 무의식의 남성성)의 관심을 기울여야 하듯이.

나는 내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여성적 원형인 아니마(anima)가 전해주는 상징적 메시지를 소홀히 하지 않을 때, 지금의 나보다 더 성숙하고 완전한 삶을 가꾸어나갈 수 있다고 한다.

융이 말하는 심리적 양성성은 여성 안에 남성이 깃들어 있고 남성 안에 여성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때문에 한 인격체가 결핍되거나 치우침 없이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 안에 감추어진, 아니 한 남성과 한 여성 안에 각각 억압되어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한 인격체 안에서 통합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나도 그녀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꿈이 내 안의 무의식적 결핍과 의식적으로 무시해 왔던 것들을 보여주고, 내 안의 여성이 내가 일상에서 소홀히 했던 또 다른 나의 자아라면 그녀는 내게 무엇을 말하려 했던가? 가슴이 멍든 사마리아 여인 같은 그녀는 남성성으로만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안팎으로 통합된 자아? 나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시에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꿈속의 여인은 서러움과 불평등, 무자비한 폭력적인 관계 앞에 던져진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 같았다.


순둥이처럼 수도원의 규칙을 나름 착하게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동생이 꿈속에 나타나면 매우 폭력적으로 변한다.

세상에 비친 나와 180도 다른 나는 무자비한 심판자처럼 동생을 심하게 닦달하거나 폭행을 가한다. 손에 잡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동생을 때리기도 한다.

참 착한 수도자의 착한 얼굴 속에 감추어진 폭력을 나는 꿈속에서 죽은 동생에게 풀어내고 있었다.

소심하고 소극적이며 우유부단한 착한 수도자가 꿈속에서는 무자비하고 단호하며 자기주장을 굽힐 줄 모르는 폭군의 삶을 살고 있었다.

"융의 심리학에서는 좋은 꿈과 나쁜 꿈, 길몽과 흉몽을 가르지 않아요. 다만 융에게 꿈은 무의식의 조력자이지요. 한 사람의 무의식적 결핍을 드러내고 때로는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해주기도 하지요.

꿈은 무의식이 의식을 향해 보내는 간절한 메시지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꿈의 내용을 잘 살펴보고 그 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상징적 의미를 숙고해 보면 내가 바쁜 일상을 핑계로 놓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알 수 있지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으면서 내내
가슴이 멍든 여인을 다시 떠올렸다. 성경 속 사마리아의 여인 같은 그녀. 슬프고 창백한 그녀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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